영화 ‘버드’ 따라잡기 — 스크린에 펼쳐진 파커의 삶과 음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재즈 사랑이 빚어낸 명작, 영화 '버드'가 재즈 거장 찰리 파커의 모든 것을 스크린에 펼쳐낸다. 눈부신 음악적 재능 뒤에 숨겨진 마약과의 사투, 인종차별의 아픔, 그리고 비극적 몰락까지, 파커의 파란만장한 삶과 당시 시대상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In a nutshell

    영화 ‘버드’ 따라잡기: 스크린에 펼쳐진 파커의 삶과 음악

영화 ‘버드’ 따라잡기: 스크린에 펼쳐진 파커의 삶과 음악

파커가 세상을 뜬 지 수십 년 만인 1988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워너 브라더스 사에서 그의 일대기를 사실적으로 감동 깊게 그린 전기 영화 버드를 감독하여 큰 화제를 모았다. 전설적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의 일대기를 본격적으로 재현해 냈다는 점에서, 또한 작품의 완성도에서 그 영화는 당시 재즈계 최대의 화제였다. 나아가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하여 더욱 화제를 꽃피웠다.

왕년의 서부극 명배우 정도로만 알려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사실은 재즈광이라는 점이 공개되어 부수적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영화다. 사실 이스트우드는 영화 스타가 되기 전까지는 재즈가 삶의 방편이기도 했다. 즉 트럼펫이나 피아노 연주가 그의 아르바이트이기도 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는 오래전 버드가 살아 있을 때 버드의 라이브 연주까지 직접 감상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영화는 그러므로 우선은 이스트우드가 깊이 존경해 온 찰리 파커에 대한 기억의 형식이기도 했던 셈이다.

우리에게 그 영화가 더욱 의미 있었던 것은, 그것이 한국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반 극장이 아니라, 안방극장 곧 TV를 통해서였다. 1994년 9월 24일 MBC-TV 주말의 명화 시간에 1부, 2부로 나뉘어 방송된 버드가 그것이다.

안방에서 그 영화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재즈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음에 틀림없다. 또한 전기 영화라는 일반적인 잣대로 보았을 때도 높은 점수를 받았던 작품이었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이제 그 영화 속으로 쭉 들어가 보자.

시작하면, 흑인과의 한 집 테라스에서 소년 파커가 알토 색소폰으로 잘 알려진 민요의 한 소절을 연주하며 왔다갔다하는 장면이 나온다.

곧이어, 1943년 뉴욕 52번가의 나이트클럽 스리 듀스로 배경이 바뀐다. 그곳 무대에서 파커는 엄청난 속주(速奏)를 펼친다. 관객들의 환호가 끊이지 않는다. 파커의 연주가 도를 높여감에 따라, 기성 연주인들의 얼굴은 점점 먹구름에 덮여간다. 예상했던 대로, 파커는 불 같은 기립 박수(standing ovation)를 받는다.

“난 끝났어! 상대가 안 돼.” 파커의 그 연주를 듣고는 완전히 기가 죽은 한 흑인 색소포니스트가 다리 아래 강물로 자기 색소폰을 던져버리면서 이렇게 중얼대는 장면이 바로 뒤를 잇는다.

다음, 1949년으로 시간이 흘렀다. 장소는 같은 곳이다. 다만, 클럽의 이름이 다르다. 버들랜드 Birdland가 그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파커의 애칭을 딴 클럽이다.

전기 영화로서 이 영화의 매력은 당시의 풍경을 그대로 잘 묘사한 데서 더욱 살아난다. 예를 들어, 파커의 음악이 대중에게는 어떤 식으로 다가왔나 하는 점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파커의 재즈가 ‘진지한 감상’의 대상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판이했다. 즉, 생활 속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흥겨운 음악이었다. 이러한 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 어느 클럽에서 파커가 때는 지금 (Now’s the Time)을 신나게 연주하면, 그곳에 온 손님들이 그 곡에 맞춰 박수 치고 춤추며 신나게 노는 장면이 그 대표적 예이다.

또, 파커가 연회에 초청된 악사로서 나오는 장면 또한 당시의 훌륭한 풍속도이다. 그것은 유태인의 결혼 피로연 자리였다. 거기서 파커는 그들의 민요를 흥겹게 연주한다. 그런데 연주가 점점 도를 더해 가더니, 결국에는 현란한 즉흥 속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유태인들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완연하다. 그러나 파커는 아랑곳않고 그 즉흥을 더욱 신나게 펼친다. 그러자 유태인들도 환호하며, 열광하고 만다.

그러나 당시 미국 사회 전체에서 행해졌던 흑백 차별의 정도는 지금의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시가지의 어느 식당 입구의 출입문에 아무렇지 않게 걸려 있는 팻말이 그것이다. (WHITE ONLY)라고 씌어 있다. ‘백인 전용 식당’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서 흑인이 마약에 손을 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영화는 파커가 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 데 대한 설명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것은 파커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하는 고백의 형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15세 때, 고통을 완화시키는 데 좋은 약이라고만 하니까 그 정체도 모르고 마약에 손 댄 것이다.

시작이야 어쨌든, ‘흑인 마약쟁이 악사’라는 딱지는 치명타였다. 본인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다. 어느 무대에서 파커의 나의 모든 것 All of Me이 끝나자 관중들은 열광하며 꽃을 던진다. 이어, 대기실로 돌아온 파커가 다짐하듯 독백한다.

디지나 듀크 같은 성실 파하고 나는 질적으로 다르다? ……약 끊을 거야, 끊고 말고!.

그러나 현실은 파커를 그냥 두지 않았다.

2부로 이어진다. 2부를 연 것은 클럽 버들랜드에서의 멋진 블루스 Cool Blues 연주이다. 이어 화면은 마약에의 유혹, 알 수 없는 죽음의 예감, 조여드는 법망, 뒷골목의 건달 깡패들 따위를 강하게 암시한다.

이 무렵, 파커는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클래식 반주를 배경으로 한 연주가 그것이다. 그 음악 로라 Laura로 카네기홀에도 서고, 취입도 하게 되었다. 그 취입 장면이 잠시 비친다. 파커가 틈틈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곁들여진다.

그러나 파커는 마약 소지 등의 혐의로 끝내 법정에 서게 된다. 마치 파커의 찢어진 마음 같은 도시의 밤거리에 비가 억수처럼 퍼붓고, 파커는 그 거리를 헤매며 이렇게 중얼댄다.

판도 많이 팔렸겠다. 그래, 남 좋은 일만 시켰지 ……

이 무렵, 파커는 평소의 자유분방한 생활 태도에다 시시각각으로 자신을 옥죄어 들어오는 건강 문제와 사회와의 괴리 등의 문제로 인하여,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밤 불가피하게 연주 시간에 늦어진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당시 파커가 클럽에서의 연주를 끝내고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면서 한 이 말은 파커의 당시 생활상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사는 꼴은 더욱더 말이 아니게 되어갔다. 자신이 나돌아 다니던 그 와중에 딸이 죽었다. 그 죽음을 당연히 부인 혼자만 지켜보았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파커는 자기 숙소에서 흐느끼며 부인에게 비슷한 내용의 사과 전보를 수도 없이 띄우는 것이다.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게 곤두박질쳐 갔다. 1954년 9월, 뉴욕이었다. 억수처럼 내리는 빗속을 뚫고 앰뷸런스가 한 대 달려간다. 약물 자살을 기도한 파커가 그 안에 실려 있었다.

다음 해 3월 12일, 파커는 뉴욕에서 삶을 마쳤다.

이제 파커의 이야기를 정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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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커와 길레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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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커의 삶 곳곳에는 재즈의 신화적 인물들이 저렇게 자연스러운 배경으로서 등장한다. 베이스의 찰스 밍거스, 피아노의 셀로니어스 몽크 등이 바로 그 일례이다.

그전에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비밥의 쌍둥이, 그러나 삶의 방식은 판이했던 디지에 대해 파커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던가? 때로는 격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정다감한 사람, 파커는 디지에게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었다.

디지 길레스피, 나의 영원한 동지……. 아! 이게 내가 안고 있는 영원한 모순이야

그 말을 들은 뒤지는 자리를 뜬다. 이미 당시 파커의 간과 위는 걸레가 되어 있다시피 했고, 뒤지는 건실한 생활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잘 꾸려 나가고 있었다.

영화 버드의 뒤편 중간 부분에는 파커의 내면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사들이 펼쳐진다. 우리는 이 대화를 따로 떼내어,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은 디지와 모처럼 맞부닥뜨린 파커가 밤 바닷가에 앉아, 그와 나누는 대화이다. 이렇게 시작된다.

디지, 자네와 나, 바다뿐이야. 비결을 털어놔

글쎄, 쓸데없이 수다 떨고 싶지 않아!

(디지, 자꾸 외면한다.)

자네가 진짜로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연주 시간을 칼같이 지키느냐는 거지, 응?

(파커, 넋 나간 듯 고개만 끄덕끄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