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밥의 반항아들 — 새로운 음악 언어를 창조하다

버드, 찰리 파커의 광기 어린 음악적 천재성이 비밥이라는 새로운 음악 언어를 어떻게 창조했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건강 악화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직 불꽃 같은 열정으로 시대를 바꾼 그의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을 따라간다.

In a nutshell

    비밥의 반항아들 — 새로운 음악 언어를 창조하다

비밥의 반항아들 — 새로운 음악 언어를 창조하다

버드는 급히 말했다.

빨리 들어가 보자고, 디즈. 방금 굉장한 것을 발견해 냈단 말이야. 꼭 자네가 들어야 돼

그날 잠들기 바로 전까지만 해도 나는 버드의 솔로를 악보에다 꼼꼼히 옮겨 적고 있었다. 불같은 성격의 버드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내가 대답했다.

지금은 안 돼. 좀 있다가 날이 새면 듣지

안 돼! 버드가 고함쳤다. 날 새면 다 까먹을 것 같단 말이야. 지금은 내게 고스란히 다 있어. 제발 들여다 줘

그때 아내가 자지러질 듯 외쳤다.

그 사람 내던져 버려요!

나는 그 말을 따라, 버드의 코 앞에 대고 문을 꽝 닫았다. 그러자 파커는 들고 있던 색소폰을 물더니, 복도로 슬금슬금 나가면서 방금 발견해 냈다는 그 선율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정말 굉장했다! 나는 허둥지둥 연필을 찾았다. 그리고 문 옆에 바싹 붙어서 그 선율을 받아 적어갔다. 행여 한 소절이라도 놓칠세라.

자기 몸 돌볼 줄은 모르던 파커는 건강이 몹시 악화되어, 마침내 1945년에 캘리포니아 주립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 무렵 그는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선배 슬림 게이야르 Slim Gaillard의 인기곡 슬림의 잼 Slim’s Jam을 취입하고 있던 중이었다.

다음은 당시 그 세션에 함께 참가했던 잭 맥비 Jack McVea의 회고이다.

그때 나는 샌디에이고 시에 있는 한 클럽에 출연 중이었다. 하루는 아내가 번호를 하나 주면서 그리로 전화해 보라는 것이었다. 말대로 전화를 걸어보니, 슬림 게이야르가 같이 좀 가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흔쾌하게 승낙하자, 슬림은 곧 왕복권 비행기표를 한 장 부쳤다.

로스앤젤레스행 티켓이었다. 마침 그날은 내가 쉬는 날이었다. 우리는 아무런 리허설도 해두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은근히 걱정된 그곳 사람이 슬림에게 슬쩍 물었다. 슬림, 어쩌면 좋지?

무대 뒤에 앉아 있다가 가끔 내가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라고 슬림은 태평스럽게 대꾸했다.

그럭저럭 시간이 되자, 버드가 도착했다. 그런데 색소폰 리드 reed를 깜빡한 모양이었다. 나는 내 테너 색소폰에는 플라스틱 리드를 쓰지만, 사탕수수로 만든 리드 cane reed도 몇 개 갖고 다녔다. 버드는 그 사탕수수 리드를 한 번 훑어보더니만 엉뚱하게도 내 면도날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두어 번 쓱싹거리며 날을 세우더니, 자기 색소폰에다 끼웠다. 시험 연주도 한번 해보지 않고는 곧바로 무대에 나와서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마침 우리 악단이 연주를 막 시작하려던 그때였다.

당시 게이야르는 한 레코드를 제작하면서, 함께 참가한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것을 즉흥적으로 구상해 냈다. 파커를 찰리 야드버드 오루니 Charlie Yardbird O’Rooney라고 소개한 그는 지금 자기 색소폰을 갖고 있는지도 물었다.

찰리는 대답했다. 예, 지금 갖고 있는 악기는 내 것이 맞아요. 그런데 이 리드가 말썽이군요 그 말에 게임 야르가 물었다. 리드가 하나도 없나요? 그 말이 정말인 것을 알고는 찰리에게 한 가지 일러주었다. 맥부티 McVouty한테 한 개 있을 거요. 그걸 좀 손질해서 쓰도록 해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사람은 그것이 십중팔구는 게이야르의 농담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맥비까지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는 정말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