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 게츠, 보사노바를 떠나다: 재즈 본연의 길을 찾아서
이제, 초점을 세계 재즈에서의 보사 노바로 돌려보자. 〈재즈의 한 장르로서의〉 보사 노바──위에서처럼 〈팝 장르로서의〉 보사 노바가 아니라 ──의 행로는 그 태두였던 게츠의 거취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가 고심 끝에 내린 선택의 방향을 추적해 보기로 하자.
먼저, 결론부터 말한다. 세계를 강타했던 1963년의 저 앨범 『게츠/주베르투』 (Getz/Gilberto) 식의 재즈, 즉 보사 노바 재즈와의 결별을 그는 택한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정통 재즈〉로 전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정통 재즈로 〈복귀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1960년대 초기부터 미국 재즈계를 휩쓴 말이 바로 〈보사 노바 광풍bossa nova craze〉이었다. 그 〈광풍〉을 본격적으로 몰고 온 작품이 『게츠/주베르투』 바로 전인 1962년 초에 발표한 앨범 『재즈 삼바』 (Jazz Samba)였다. 이 제목은 다분히 설명적이다.
즉, 아직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재즈 장르인 〈보사 노바〉를 좀 더 낯익은 말로써 설명한 것이 바로 그 제목이다. 우리는 그 제목들을 시간 순으로 배열하여, 중요한 음악 정보를 하나 도출해 낼 수 있다. 바로 〈재즈 삼바 =〉 보사 노바〉라는 식이 어렵지 않게 유추되는 것이다. 〈보사 노바〉를 딴 말로 바꾸라는 문제가 있다면, 〈재즈 삼바〉가 정답이다.
하여튼, 그 〈재즈 삼바 광풍〉의 장본인인 게츠 자신은 그것으로 물러나, 〈재즈 그 자체〉를 택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변증법의 핵심 논리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aber trotzdem〉와 정확히 부합되는 사례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 변증법에 대입하여 다시 말하자면, 보사 노바 덕택으로 누린 그 폭발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출발점인 〈재즈 본연〉으로 다시 향해 간 것이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정통 재즈 팬〉들은 아낌없는 환호로써 게츠를 맞아들였다. 〈외유〉를 마치고 제자리에 돌아온 대가를 기꺼이 환영한 것이다.
재즈를 제대로, 또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사실은 대단히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즉, 참 재즈란 〈귀에 쉽게 잘 들어오는 음악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일종의 〈정신〉이라는 중대한 사실을, 그 일은 훌륭하게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열거하는 몇 앨범들은 게츠가 그같이 정통 재즈에로의 복귀를 선언하고 나서 발표한 것들이다.
- 『돌고래 The Dolphin』 1981년(54세),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실황 앨범. 게츠가 〈정통 재즈〉에로의 기치를 명백히 내걸고 발표한 첫 앨범이다. 4중주 편성(테너 색소폰, 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이상이 교과서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물 밖으로 몸을 곧추세우고 곡예하는 돌고래들 앞에서 게츠가 앉아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장면이 재킷에 인쇄되어 있다. 그 모습은 〈자연과의 공존• 친화〉를 상징한다. 게츠는 이 앨범을 시작으로, 〈록과 전자 음악, 즉 비자연적 음향의 시대〉에서 〈어쿠스틱 재즈의 존재 가능성과 그 양식〉을 본격적으로, 그리고 줄기차게 탐색해 나간다. 다시 말해, 그 앨범의 메시지는 〈어쿠스틱 재즈, 이것이 우리 시대의 ‘자연’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
- 『기념일 Anniversary』: 60세 기념 실황 앨범. 1987년 7월 덴마크 코펜하겐, 4중주 편성.
- 『열정적으로Apasionado』: 1990년 A&M 사에서 발표. 여러 가지 타악기와 신시사이저를 다양하게 구사한 본격 퓨전-쿨재즈. 이 앨범에 등장하는 여러 악기들 중 록(rock)의 어법이 가장 농후한 악기는 베이스이다(여기서는 당연히 전자 베이스). 다양한 리듬 속에서 전체의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은 물론 게츠. 한층 더 원숙해진 거장 게츠의 면모가 전편에 걸쳐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게츠의 긴 재즈 여정은〈쿨 재즈에서 보사 노바로, 다시 시대의 변화를 수용한 쿨 재즈로〉로 요약될 수 있다. 이 길은 보사 노바라는 매력적이고 대중적인, 그러나 꽉 짜인 리듬 형식이 우선되어야 하는 장르가 재즈 내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운명이기도 하다.
재즈에서 지고(至高)의 가치는〈개성과 자유〉,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특정 형식과 관행을 인정한 뒤에야 획득되는 미(美)〉에 대해 끊임없이 길항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재즈의 미학이다.

▲ 보사 노바로 세계를 휩쓸었던 스탠 게츠.
그러던 그가 정통 재즈에로의 회귀를 명백히 선언하고 만든 작품『돌고래』(1981년). 그의 그러한 노선 변경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보사 노바를 자꾸 반복하도록 한 것은 사실 음반사의 장삿속이었다고 그는 발표 직전 털어놓은 것이다.
보사 노바 음악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참으로 강인했고, 또 여전히 강인하다. 그러나, 재즈 쪽에서 본다면 그것은〈또 하나의 형식과 관행〉, 곧〈극복되어야 할 또 하나의 속박〉에 다름아닌 것이다.
여기서, 당시 장본인인 게츠가 털어놓은 이야기가 그의 음악적 행로를 잘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1981년 『돌고래』발표 직후 게츠가 최상급의 재즈 평론가에게 고해하듯 털어놓은 고백이다.
이 앨범의 시청회(試廳會)를 끝낸 뒤, 스탠은 나에게 말했다.
「이제, 나는 나의 재즈관을 딱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위대한 재즈맨이 되는 데에 필요한 덕목은 네 가지〉라는 사실을 이제는 깨닫게 된 것입니다. 즉, 정당한 기호 taste, 용기 courage, 개성 individuality, 상식과 관행에 굴하지 않는 오만 irreverence, 이 네 가지입니다.
내가 나의 재즈를 통해 견지해 내고자 하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바로 이것들입니다. 인기를 누리려는 욕심에서 대중의 구호에 맞도록 그럴싸해 보이는 음악을 할 수도 있겠죠.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과거의 내 음악이 바로 그런 거였어요. 재즈 예술의 정수와는 거리 먼 음악 말입니다. 특히, 대음반 회사의 부당한 압력에 이제 다시는 굴하지 않을 겁니다.」
(레너드 페더 Leonard Feather와의 인터뷰에서)
재즈는 분명〈대중의 음악〉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타 대중음악을 관류하는 상업주의 논리가 재즈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간주해 버리면, 참으로 곤란하다. 분명 그와는 다른 독자적 발전 논리가 재즈에는 확립되어 있다. 참된 재즈 아티스트에게〈인기〉란 실로 주변적 문제에 불과한 것이다. 게츠가 말한 그대로이다. 인기란 돈, 곧 음반 회사의 관심사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게츠의 인간적 면모는 어떠했나? 재미있는 일화 하나 로그 해답을 대신한다.
1987년 코펜하겐에서 있었던 회갑 기념 연주회 도중의 에피소드이다. 첫 곡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어찌 보면 한 시대를 주름잡은 노예술가에 대한 관객들의 의례적 대응일 수도 있다.

▲ 보사 노바의 트로이카.
스탠 게츠 옆으로 주앙 주베르투(기타)와 부인 아스트루드 주베르투(보컬)가 나란히 서 있다(1976년이의 앨범『두 세계의 정수』에서). 그러나 얼마 후 게츠는 정통 재즈로 돌아갔다.
그러나 게츠는 그 같은 환성에 너무나 익숙해진 노대가이다. 그는 그처럼 열띤 환호를 보내준 코펜하겐의 팬들을 향해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곳에 다시 오게 된 제 마음, 지금 한정없이 기쁩니다. 저는 한때 이곳 코펜하겐에서 3년을 살았습니다. 제 마음은 이곳 코펜하겐에 남아 있습니다 Thank you. It’s a very, very big pleasure to be back here. I lived in Copenh-agen for three years and I left my heart in Copenhagen]
조용히 듣고 있던 코펜하겐의 팬들은 그 말을 듣고는 더욱 열광적인 환성을 올렸다. 그런데 이어 나온 게츠의 다음 말,
「어젯밤 스톡홀름 연주회에서도 써먹은 말입니다만 …… I said the same thing last night in Stockholm…」
이 말이 끝나자마자, 객석에서는 일시에 폭소와 박수가 터져 나온다. 게츠도 가볍게 웃는다. 노장의 유머는 물론, 그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객석의 여유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