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 보사노바에 스며들다 — 70년대부터 이어진 매혹의 선율

1970년대부터 한국 대중가요에 스며든 보사노바의 역사를 살펴본다. 장현, 이수만, 김민기, 양희은부터 이정선, 오석준, 김현철, 조덕배, 박학기 등 수많은 뮤지션들이 보사노바 리듬으로 한국인의 감성을 어루만졌음을 조명한다. 재즈계까지 이어진 보사노바의 우아하고 서정적인 매력을 알아본다.

In a nutshell

    한국 대중가요 속 보사노바의 향기 — 70년대부터 이어진 선율

한국 대중가요 속 보사노바의 향기 — 70년대부터 이어진 선율

한국에서 포크 음악(또는 통기타 음악)은 1970년대 대체 문화 counter culture, 이른바 청바지─통기타─생맥주 문화의 상부 구조였다. 거기에 새롭게 자리 잡은 음악 언어가 바로 보사 노바이다. 그 맥은 흔히 통기타 가수로 통칭되던 젊고 참신한 포크 가수들로부터 형성된 이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럼 먼저, 한국에서 1970년대를 기점으로 한 보사 노바의 수용사(史)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장현의 나는 너를미련, 이수만의 행복, 이정선의 오직 사랑뿐사랑의 약속등 1980년대 초까지 보사 노바 곡들이 거둔 인기는 멀잖아 몰아닥칠 〈보사 노바 대중화〉의 강력한 징표였다. 그 현상은 대학가와 다운타운과 같은 〈젊은이들의 처소〉에서 그 둥지를 틀었다.

특히, 이 시기에 김민기가 쓰고 양희은이 불렀던 보사 노바 곡 그사이서울로 가는 길은 대학가에서 인상적이리만치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두 곡은 청년 • 대학생이 겪는 갈등,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태어난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로 가야만 되었던 시대의 기막힌 농촌 같은 우리의 척박한 현실을 보사 노바에 실어 보냈다. 그런데 이 곡들은 자칫 〈전투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운 가사의 내용과는 달리 곡 흐름은 너무나 고즈넉하고 서정적이다.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갖고, 또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이다.

이후 1980, 1990년대로 접어들면, 보다 대중적인 가사의 보사 노바 곡들이 줄을 잇다시피 한다. 오석준의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또 하루를 돌아보며,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 박광현의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 길고 긴 어둠 속에서도, 박학기의 나른한 오후, 향기로운 추억, 배따라기의 추억 속의 해변, 믿어주오등 끊이지 않았다.

한편, 〈제1대 보사 노바 가수〉 이정선은 그 시기에 접어들어, 한층 더 고상해진 보사 노바 곡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 대표적 예가 1988년작 행복하여라, 아무도 모르게, 오늘밤 함께등이다.

그리고 계속 이어진다.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 한영애의 호호호, 봄여름 가을 겨울의 노래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과 연주곡 못다 한 내 마음을(이 곡에서는 보사 노바에서 시작했다가 록으로, 그리고 다시 보사 노바로 돌아와서 끝맺는 그 변화가 눈여겨볼 만하다), 양희은의 1994년도 작 나홀로와 문희경의 슬픈 환상, 박선주의 시간 속에서등등 알고 보면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또, 같은 해 MBC-TV의 주말 드라마로서 크게 인기 끈 서울의 달의 주제가 서울, 이곳은역시 보사 노바 곡이다.

위의 곡들 모두는 보사 노바 리듬을〈교과서적으로〉훌륭하게 구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리듬과 분위기를 응용한, 즉〈보사 노바적〉인 곡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한 곡들까지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마치〈뽕짝〉곡들을 일일이 꼽아보는 것만큼이나 미욱한 노릇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가 한국 대중 가요에서의 보사 노바 약사(略史)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재즈계는 그 보사 노바에 대해서〈인색〉했나? 그렇지 않다. 박성연 작사, 이판근 편곡의 물안개가 본격 재즈 보사노바 1호로 꼽힌다. 그 곡은 재즈 그룹〈야누스 Janus〉의 제1집 음반에 실려 있다.〈야누스〉란〈백 퍼센트 국산 재즈 카페 1호〉의 상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재즈 제1세대 중 대표 주자들이 모여 결성한 기념비적 재즈 그룹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들 한국의 보사 노바 곡들이 지닌 최대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우아하며 대단히 서정적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특히, 우리 정서와 잘 맞으며 따라서〈귀〉에도 잘 들어온다. 그래서 보사 노바는 눈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한국인과 끈끈한 유대를 계속 유지해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