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적 발명 이야기 — 뮤트와 45도 트럼펫의 탄생 비화

재즈 뮤지션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소리를 찾아 헤매고, 때로는 멀쩡한 악기를 뜯어 고치거나 일상 용품을 활용해 기발한 발명품을 만들어낸다. 깡통으로 시작된 버킷 뮤트의 탄생 비화와 우연한 사고로 전설이 된 디지 길레스피의 45도 트럼펫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 Soulo Bucket Mute For Trump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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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zz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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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y 27, 2025

In a nutshell

    재즈적 발명 이야기 — 뮤트와 45도 트럼펫의 탄생 비화

재즈적 발명 이야기 — 뮤트와 45도 트럼펫의 탄생 비화

진정한 재즈 뮤지션이라면 자신의 음악이 한 곳에 가만히 고여 있는 일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는 보다 더 새로운〈그 무엇〉에 사로잡혀있다. 그렇게 시대를 앞서가는 음악에 골몰하다 보니, 전에는 없던 새로운 방식의 주법을 개발해 내는 일도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다음은〈재즈적 발명〉의 사례들 가운데서 특히 잘 알려진 것으로 뽑은 이야기들이다.

그 두드러진 예가 관악기의 경우이다. 새 운지법을 개발하거나, 밸브 조작을 보다 미세하게 한다거나, 관악기를 연주하면서 동시에 입으로는 허밍한다거나 아니면 미끄럼 sliding 주법을 새롭게 개발해 낸다거나 하는 따위는 초창기 재즈에서는 다반사였다. 나아가 그들은 원하는 소리를 찾아내기 위해서라면, 멀쩡한 악기를 뜯어 고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드러머들도 이에 질세라 자신에게 맞는 여러 가지 다양한 드럼 세트를 스스로 고안해 냈다.

또, 색소폰 • 클라리넷 등 목관 악기 주자들은 새 리드 reed나 마우스피스를 개발하는 데 열심이었다. 금관 악기 쪽도 마찬가지였다. 즉, 나발 주둥이 bell를 손이나 사발 같은 것으로 막고 붙였다 뗐다 하는 식으로 조작하는 등의 방법을 쓰면, 이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재미있는 소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맨 처음에는 그냥 맨손바닥으로 주둥이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실험 끝에 둥그런 밥공기 같은 도구로 굳어져, 재즈 트럼펫의 보조물로 대우받고 있다. 그것은 곧〈버킷 뮤트 bucket mute〉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재즈에서의 대표적 발명품이다.

〈버킷 뮤트〉란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요? 콩 통조림 깡통이나 양배추 절임 깡통이 그 원조예요. 그걸 발견해 낼 때까지, 흔해 빠진 생활용품 모두가 우리의 실험 대상이었지요. 기름이나 시럽통 같은 거요.

그 당시 우리가 일하던 클럽에 온 손님들이라면,〈이거 혹시 잘못 들어온 거 아닌가?〉라고 의아해하셨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깡통 종류는 거기에 모두 집합해 있었으니까요. 쓰레기장도 그런 쓰레기장은 없었지요.(중략) 깡통에도, 모자에도 만족 못한 우리는 물컵, 침받이 cuspidor 등등 그럴듯하다 싶으면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실험했지요. 새롭고 다른 소리에 다들 정신을 빼앗겨 있었으니까요.

(증언: 허먼 도트리 ── 초창기 재즈 뮤지션)

〈새소리〉를 발명한 기쁨도 잠시, 발명자들 본인은 자칫 표절당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를 거듭했다. 때로 그 모습은 자못 희극적이다.

재즈 뮤지션이기도 했던 어느 군악대원 이야기이다.

어느 날 밤의 무대에서 그는 아직 생소하던 뮤트를 꺼내 붙여 가지고는 무대를 가로지르면서 연주했다. 당장 전 시카고에 그 소문이 쫙 퍼졌다.

바로 다음날 밤부터, 그가 출연하는 무대란 무대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모두가 그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사람은 다른 뮤지션이 그새 기법을 보고는 혹시 베껴먹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기 때문이다.

그를 실제로 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연주할 때 손을 꼭 수건으로 덮고 했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자신의 운지법 __fingering__을 아무도 따라하지 못하게 하는, 나름대로의 방지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뮤트〉같은 최신 기법은 더더욱 꼭꼭 감춰둬야 했던 것이다.

얼마 안 가, 그〈버킷 뮤트〉에는〈와와 뮤트 wa-wa mute〉라는 별칭이 하나 붙게 된다.

(증언: 프레디 케퍼드 —— 초기 재즈의 거장)

그런 곡절을 거쳐 생긴〈뮤트〉는 트럼펫 소리를 얼마나 혁신시키는가. 감미롭게, 다정다감하게, 때로는 사색하듯.

굳이 재즈 팬이 아니더라도, 디지 길레스피가 저 유명한 45° 상향 트럼펫을 양볼이 터져라 불고 있는 사진을 한 번은 보았을 것이다. 그 고안자는 바로 길레스피 그 자신이다. 그 독특한 모습의 트럼펫이 생기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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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 길레스피와 그의 상징인 45° 트럼펫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 트럼펫이 이처럼 별난 꼴을 하게 된 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연의 소산이지. 아무도 없는 지하실 같은 데서 혼자 골똘히 궁리한 끝에 개발해 낸 것처럼 꾸며댈 수도 있겠지만, 사실인즉슨 그렇지 않다 이거지.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그 일은 1953년(36세) 1월 6일 월요일 밤 내가 일하던 45번가 스투키 클럽 __Snookie’s__에서였어. 사실 월요일은 내가 쉬는 날이었는데 그날이 마침 아내의 생일이라, 쇼 비즈니스에서 알게 된 동료 뮤지션들을 모두 그리로 불러 모았지. 그날 온 사람들을 대충 꼽아보면, 일리노이 자케, 사라 본, 스텀프 앤 스텀피……, 그리고 몇 명 더 있지.

그때까지만 해도 내 나팔은 그 카페에 진열돼 있던 다른 트럼펫들과 마찬가지로, 쭉 곧았지.

나는 인터뷰 선약이 있었던 터라, 그걸 끝내고 그 클럽으로 다시 돌아왔지. 그전에 스텀프가 홀을 그냥 왔다갔다하고 있다가, 누군가한테 떠밀려서 하필이면 내 트럼펫 위에 넘어지고 만 거지. 곱게 넘어졌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주둥아리 bell를 세게 건드렸다나!

돌아와 보니, 나발 주둥이가 과연 하늘로 향해 있더구먼. 사람 착한 자케는 그 자리를 이미 피하고 난 뒤였지.「돌아오면 자기 악기가 엉망이 된 것을 보게 될 텐데, 그전에 여길 뜨겠어」라는 말을 남기고 말이야.

어쨌든 그 자리는 아내의 생일 파티 자리였으므로, 나 때문에 거길 망치기는 싫었지. 그래서, 나는 휘어진 트럼펫을 들고 연주했지. 그런데 그렇게 트럼펫이 구부러지면서, 아주 작은 구멍 하나가 생기고 말았지. 나는 정확한 음정을 낼 수 없었고, 그래서 그날 밤의 내 트럼펫 소리는 왠지 이상했지.

그런데, 문제는 그걸 자꾸 불다 보니 그 소리가 좋아지더라 이거지. 변한 음색은 트럼펫 고유의 쨍쨍거리는 blare 소리가 사라진, 대단히 부드러운 soft 소리였거든. 그래서 그날 밤 내내, 나는 그렇게 변형된 트럼펫을 불고는 다음날 원상 복구시켜 놓았지.

지내다 보니, 그 음색이 자꾸만 떠올랐지.

〈잠깐만, 거기에는 분명 뭔가 독특한 게 있었는데 ……!〉

정상 트럼펫과 가장 다른 점이 뭘까, 나는 곰곰 생각했지.

〈그래, 그거야. 이 트럼펫에서는 소리가 보통 것보다 내 귀, 즉 연주자의 귀에 더 빨리 잘 들어오는구나!〉

그래서 곧, 나는 멀쩡한 트럼펫 하나를 45°로 휘어놓고는, 그걸 들고 악기 제작사인 마틴 사 Martin Company로 달려가서 말했지.「이런 모양의 나팔이 필요하오」

「당신 미쳤소?」대뜸 나온 대꾸가 이랬어.

「맞아요, 미쳤습니다. 하여튼, 나는 그렇게 생긴 트럼펫이 꼭 필요해요」

그들은 나의 뜻이 완강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내 말대로 생긴 트럼펫을 만들어주더군. 이후, 나는 그 모양만을 계속 고집해 오고 있지.

(디지의 그〈고집〉은 열렬한 추종 세력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