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못 읽어도 재즈는 된다? 초기 재즈맨들의 '귀'와 '눈' 전쟁

악보 못 읽어도 재즈는 된다? 초기 재즈 뮤지션들에게 악보 읽기는 선택이 아닌 '영혼'의 문제였다. '악보 까막눈' 에롤 가너의 일침부터 악보를 숨긴 유비 블레이크, 루이 암스트롱 악단의 유쾌한 소동까지, 재즈가 '귀'의 음악에서 '눈'의 음악으로 진화하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흥미로운 일화들과 함께 파헤친다.

In a nutshell

    교수님의 비밀: 초기 재즈맨과 악보 사이의 밀고 당기기

교수님의 비밀: 초기 재즈맨과 악보 사이의 밀고 당기기

초기 재즈 뮤지션에게 악보란 재즈 뮤지션들은 자신들이 연주하는 그 활기차고 유려한 음악만큼이나 악보를 과연 잘 볼(read music)까? 재즈의 이해에서, 이 문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클래식과 재즈, 나아가서는 팝과 재즈 사이의 차이점을 피부로 실감하는 데 훌륭한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악보를 단 한 줄도 못 읽는 까막눈이라 할지라도, 재즈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 ‘귀’는 연주력만큼 예민하고 섬세해야 한다.

이 문제가 나올 때마다 단골로 거론되는 사람이 1950~1960년대의 최상급 재즈 피아니스트 에롤 가너(Erroll Garner)이다. 가너는 어릴 적부터 청음력이 탁월하여, 독보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새로운 음악이라 해도 단 한 번만 들으면 그는 술술 다 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너가 실은 악보에 까막눈’이라는 사실을 드디어 누군가가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그 사실을 슬쩍 흘렸다. 결국 그 말은 돌고 돌아 장본인인 가너의 귀에까지 닿고 말았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가너의 응수가 걸작.

“제기랄. 이봐, 악보 좀 볼 줄 안다고 그게 바로 음악으로 들리나(Hell, man, nobody can hear you read)”

재즈 초창기에는 독보력을 갖춘 뮤지션을 가리켜, ‘교수(professor)’라 격상시켜 불렀다. 그러자,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대다수 재즈 뮤지션들이 거기에 대해 반박을 쏟아부었다. 그것은 단지 푸념의 차원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온 음악에는 ‘영혼(soul)이 없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그러나 초창기의 흑인 재즈 뮤지션 가운데서도, 악보를 대단히 잘 읽고 쓸 줄 알았던 인물이 드물기는 하지만 가끔은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유비 블레이크이다. 그 문제에 관해 유비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니그로 뮤지션들이 설마 악보를 읽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던 때였지요. 그 같은 편견이 너무 완고하던 때라, 우리는 결국 고육지책 하나를 생각해 내고 실천에 옮기기에 이르렀어요. 정말 까막눈인 것처럼 말입니다.

연주가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사람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막 터져 나왔어요.〈이야, 저 곡을 한번 들어보고 다 외웠구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바뀌어갔다. 그것은 필연적 흐름이었다. 즉, 악단 규모가 커지고 그에 따라 편곡 작업도 점점 더 세련되고 복잡해져 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연주력과 함께 독보 능력도 재즈 뮤지션의 실력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음악 까막눈들이 겪는 어려움과 수모는 그것을 지켜보는 동료 뮤지션들에게는 착잡한 풍경이었다. 그들은 그래서, 악보 보는 법을 더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재즈 뮤지션들에게도 독보력이 점점 일반화함에 따라, 게으름쟁이나 늦깎이들은 차츰 웃음거리로 전락해 갔다.

브래드 고 원스(Brad Gowans)가 어떤 악단의 리더에게 악보를 볼 줄 아느냐고 물었다. 이런 대답이 나왔다.

「충분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연주를 망칠 정도는 아니지요」

필 어소(Phil Urso)가 신임 색소폰 주자로 우디 허먼(Woody Herman) 악단에 들어갈 때의 이야기도 그와 비슷하다.

우디가 물었다.

「악보는 어느 정도 볼 줄 압니까?」

필의 대답.

「음악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을 만큼은 되지요」

루이 암스트롱이 피아니스트 얼 하인스와 파트너를 이루어 시카고의 선셋 Sunset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다음은 얼의 회고.

루이의 고향 친구인 악사 펀치 밀러 Punch Miller가 어느 날 밤, 루이가 일하고 있던 선셋 클럽에 들렀다. 그때는 마침 막간 휴식 시간 intermission 이었다. 우리는 다음 곡을 준비하느라, 또 가두 홍보 문제를 두고 이야기 나누느라 바빴다.

밀러가 편곡 악보를 돌려 보고 있을 때, 루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곡들을 한번 연주해 봐도 되겠지?」

「이 봐, 자네는 못할걸. 이 밴드 단원들은 모두 다 악보를 보고 하니까 말이야」

루이의 답이었다.

「이제 나는 악보를 볼 수 있단 말이야」

「정말?」

「그럼. 볼 수 있다마다」

「좋았어. 그렇다면, 가서 해봐」

루이가 말했다.

평소 암스트롱으로부터 친구 펀치 밀러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들은 나는 그가 연주하는 것을 더 자세히 듣기 위해서 제2피아노 앞에 앉아있던 패츠 월러 옆에 앉았다. 물론, 루이도 나와서 보았다.

패츠가 이렇게 말하고는 먼저 선율을 매겼다.

「자, 스톰프 stomp 곡으로 하나 해봅시다」

그러자 펀치는 그 자신만만하던 태도와는 달리 쩔쩔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선율 가운데 자신이 받아도 될 듯싶은 멜로디가 군데군데 있었다. 그래서 펀치는 그 멜로디 사이를 떠듬떠듬 비집고 연주해 들어갔지만, 잘 될 턱이 없었다.

보다 못한 패츠가 한마디 했다.

「아니, 지금 무슨 조 key인데 그렇게 헤매는 거요?」

거기까지는 그래도 좋았다. 그 의뭉스러운 펀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패츠가 참지 못하고 이렇게 냅다 한마디 지르고 말았다.

「다음 페이지로 안 넘기고 뭐 해요!」

그 이래로 이 사건은 뮤지션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런 식의 소동이 거듭되자, 악보를 읽는 일은 뮤지션들에게 상례가 되어갔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사태와 맞닥뜨리는 일은 공연 예술의 숙명이다. 다음의 일이 그 예다.

재즈 피아니스트 데렉 스미스 Derek Smith는 악보 보는 데 통달해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스타일이건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때는 성탄절 시즌이었다. 어느 날 밤, 연주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웬 쪽지 하나가 와 있었다. ABC-TV의 간판 프로인 굿 모닝 아메리카에서 온 편지였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Luciano Pavarotti의 반주자로 귀하께서 내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내심 약간 걱정되었다. 상대가 세계적 명태너라는 사실에 신경 쓰였고, 그렇다면 그 양반이 주문할 피아노 반주는 너무 고난도이지 않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날 새벽 다섯시에 방송국에 가서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한 시간 뒤, 파바로티가 나타났다. 그러고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곧 사람들에 둘러싸였다. 그래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데렉은 한마디도 건넬 수 없었다.

데렉이 파바로티와 겨우 한마디 하게 된 것은 아침 뉴스가 시작하여, 모든 사람의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고 난 뒤였다. 데렉이 파바로티에게 물었다.

「연주할 곡의 악보를 갖고 계십니까?」

그랬더니, 파바로티의 매니저가 자기 서류 가방을 뒤적여 악보 사본 하나를 찾아내 주었다. 그걸 본 순간, 데렉은 맥이 쫙 풀렸다. 미국 사람이라면 삼척동자들도 다 아는 캐럴 송 즐거운 성탄절을 기원합니다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가 바로 문제의 그 곡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