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 길레스피 — 트럼펫 연주법의 신지평을 연 거장

운명의 동료 찰리 파커와 재회해 비밥이라는 새 흐름과 조율하게 된다.

In a nutshell

    디지 길레스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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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 길레스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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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급의 비밥 주자들은 그들로부터 보아 10년전의 주류, 즉 30년대의 ‘스윙’의 정통과 뿌리 깊이 관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트럼펫 연주법의 신지평을 열어 젖힌 거장 존 벅스 길레스피John Birks Gilledpie의 경우, 더더욱 그러했다.

초기에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했던 그는 태디 힐 악단으로 이적한 뒤 활동 무대를 유럽으로 옮기면서 자신의 우상을 로이 엘드리지로 바꿨다. 유럽 이주 후 소속 없이 떠돌이로 지내던 그는 1939년 켑 켈러웨이 밴드에서 2년째 머물고 있었다. 우렁찬 트럼펫 소리 덕에 ‘하이 디 하이(Hi Di Hi)맨’이라는 예명을 갖게 된 그는 로이 엘드리지가 쌓아둔 재즈 트럼펫의 전통에 자기류의 개성을 쌓은 연주로 ‘Bye Bye Blues’는 초기부터 대표곡으로 주목받았다. 일단 솔로이스트로 뜨고나자 괴퍅한 기질에도 불구, 여기 저기 빅 밴드에서 콜이 쇄도했다.

하기사 찰리 파커 같은 거물과 잼 세션도 하고 의기 투합한 터였으나 정작 길레스피의 본심은 실제 벤드 작업을 한 찰리 바넷, 럭키 밀러, 얼 하인스, 존 커비 밴드쪽에 가 있었다. 그러다 1944년 빌리 엑스타인 악단에 합류하게 되는데 운명의 동료 찰리 파커와 재회해 비밥이라는 새 흐름과 조율하게 된 운명적 계기였다. 그 해 말 뉴욕의 오닉스 클럽으로 가 최초의 밥 콤보로 알려지게 된 그룹과 연을 맺었다.

캘러웨이 같은 고참둘울 통해 연예계의 속내를 제법 알고 있던 디지에게 화류계 패션은 다반사였다. 베레모, 뿔태 안경, 염소 수염 정도가 기본이었다면 하물며 오닉스 클럽의 단골에게는 평상복이었다.

그 같은 치기를 두고 젠체하는 일부 논객들은 “비밥의 예술적 빈곤”이라 폄훼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도 지나기 전 보란 듯 강 펀치가 터져 나왔으니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가 함께 이끄는 ‘Dizzy Atmosphere’와 ‘Shaw ’Nuff’가 그것이었다. 그 곡들은 장차 황금률로 자리잡았다. 코드 진행은 황금률로 자리잡게 되는데 그 두 사람이 연주한 코드와 스타일이 구조와 절묘하게 일치한 것이다. 그 곡들 앞에서는 여하한 재즈 평론가나 재즈 교사도 ‘선율적 즉흥(melodic improvisation)’이란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의 음악으로서 듣도 보도 못 한 음악적 방언이 아니고서는 재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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