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빌 데이비슨 — 정열적 코넷 주자의 원형

재즈계 최고의 자신감 있는, 대담한, 베짱이스런 코넷 주자라는 평을 받을 정도였다.

  • Wild Bill Dav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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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p 1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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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빌 데이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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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적 코넷 주자의 원형인 윌리엄 에드워드 데이비슨의 음색은 쇳소리에다 무대 제스처는 자신감이 넘쳤고 박자 감각은 군악대처럼 칼 같은 데다 스윙하고 있었다. 존 윌슨이라는 논객이 ‘재즈계 최고의 자신감 있는, 대담한, 베짱이스런 코넷 주자’라는 포복 절도할만한 평을 내놓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의 1981년 작 ‘Sweet And Lovely’처럼 눈물을 쥐어 짤 감상적 발라드에나 어울릴 밴드 리더라는 평가 또한 공존한다.

음악 경력 초기를 신시내티와 시카고에서 보냈지만 꽃이 핀 것은 뉴욕으로 이주한 1941년 이후였다. 그 곳에서 자기 밴드를 이끌고 클럽 닉스로 진출해 1945년에 에디 콘돈의 클럽에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아트 호데스Art Hodes의 핫 파이브와 연결되어 그의 최고 걸작으로 추정되는 음반을 남겼던 곳이다. 한창 잘 나가던 소프라노 색소폰 주자 시드니 베셰의 대항마로 등장한 데이비슨은 과연 기대에 부응해 단조풍의 걸작 ‘Save It Pretty Mama’와 ‘Darktown Strutters Ball’으로 답했다. 콘돈과의 레코딩 협업은 나름 성과가 있었는데 1951년도 콘돈 클럽에서 녹음된 ‘I’m Comin’ Virginia’나 ‘Dippermouth Blues’와 ‘Blues My Naughty Sweetie Gives To Me’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 했다.

1960년 캘리포니아로 건너온 데이비슨은 그러나 동부 해안 지역에서 보인 활력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유럽에 대한 투어를 정기적으로 가지게 된 것이 그런 연유였지만 성공적 유럽 투어의 꿈은 끝내 이루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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