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테이텀 — 거물들을 떡 주무르듯

노먼 그랜츠, 아트 테이텀에 날개를 달아주다

In a nut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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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테이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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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텀에게 향후 4년 간 풍요의 시간을 보증한 사건이 벌어졌으니, 1949년 체결한 캐피털 레코드와의 계약이 그것이다.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 만큼이나 그 속을 채워줄 표현 기법의 풍성함이 그것이었는데 특히 ‘Someone To Watch Over Me’는 바로 그 발라드 기법의 보석 같은 곡이다. 1952년에 제 2기의 트리오가 결성되었지만 이듬해 테이텀은 노먼 그랜츠와 음반 클레프Clef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100명 중 68명의 뮤지션이 테이텀을 ‘재즈 연감(Encyclopedia Year Book Of Jazz)’ 선정 베스트 동료로 선정하긴 했으나 그랜츠의 말 한마디는 그 이상의 상찬이었다. JATP 멤버들은 취입 중의 테이텀을 ‘열외의 아티스트’로 치부하고 있었는데, 어떤 곡이든 테이텀이 원하는대로 한다는 실질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 같은 반응에 테이텀의 손가락은 거장적 연주로 화답했다. 간드러지는 ‘Sittin’ And A-Rocking’, 저돌적인 ‘You Took Advantage Of Me’. ‘Tea For Two’ 같은 유행가 선율들이 경이로운 영감으로 거듭났다.

1954년 그랜츠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번득였는데 테이텀에게 여타 재즈 거물들과 녹음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관악 주자에게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미 자기류에 심취해 있었던 이기주의자는 타인들을 위해 독백을 멈출 수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초대 받은 게스트의 편곡력, 즉 충돌 완화 능력에 달려 있었다.

두 가지 극단적 사례가 있다. 벤 웹스터와의 무대든, 버디 드 프랑코와의 무대든 테이텀의 연주만 두고 볼 때 거기에는 차이가 없을 거라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전자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협연을 거두었던 반면 후자의 무대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드 프랑코는 자기류의 연주에 우위를 두고 판을 짜려 했으나, 웹스터는 개성을 담은 연주로 차별을 두면서도 테이텀의 연주와 경쟁하지 않았다. 한편 요설 같은 연주의 라이어넬 햄프턴, 유능하면서도 과묵한 베니 카터 같이 극단적 스타일의 주자와 나란히 어깨를 겨눴을 때의 결과가 확연히 달랐다는 사실은 팬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뜨아한 사실이었으리라.

그러나 그 시리즈 녹음 기획과 두 사람 사이의 우정에 힘입어 테이텀의 이력에서 그랜츠가 위업을 달성했던 것은 확실하다. 찰리 파커와 작업하던 피아니스트와의 협업 계약에 따라 카네기홀 무대도 이루어질 뻔했다. 그랜츠는 당시 공연 계약에서 공연 홀의 관행에 따라 피아노 주자 이름을 그냥 ‘Tatum’이라고만 했는데 백색 타이와 연미복이 지켜지는 한 실시되었다. 서거 1년 전부터 행해져 오던 규칙이었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가면서 테이텀 본인은 그만둘 것을 바라고 있었다. 결국 순회 연주가 멈춘 것은 그랜츠가 테이텀의 상태를 받아들여 공연 중단의 결정을 내리면서였다.

생애 첫 ‘정지’를 결행하면서도 테이텀은 작은 규모나마 취입을 단행했다. 만약 테이텀의 선견마저 없었다면 지금 우리에게 음악 사상 최고급의 뮤지션이 남긴 시제품을 감상하는 축복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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