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테이텀

불가사의의 재즈맨, 아트 테이텀은 불과 열여섯의 나이에 소규모이긴 하나 자신의 밴드를 만든 신동이었다. 1932년에 인기 여가수 에덜라이더 홀(Adeleide Hall)의 피아노 반주자가 되고 뉴욕에서 그녀와 함께 작업해 첫 취입을 했다. 거기 있는 동안 그가 선보인 눈부신 기교에 홀딱 반한 지역 음악인들로부터 애먼 격분을 사기도 했다. 시카고 쓰리 듀스 극장에서의 상주 뮤지션 활동 2년(1935년, 36년)과 성공적이었던 할리우드 시기가 뒤를 이었고, 뉴욕에서의 1년에 이어 38년엔 영국 체류가 따랐다.
첫 스튜디오 작업이 있었던 1932년 즈음에 테이텀은 이미 완벽한 피아니스트였다. 40년대 후반부에 그가 한 일이라곤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그 기교를 다듬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테이텀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피아니스트로서, 즉 왼손의 완벽한 리듬 섹션을 타고 오른손으로는 빅 밴드 사운드를 구현했다. 처음으로 선보인 믿기 힘든 연주가 Elegie로서, 당시 객석을 홀렸던 그 연주는 두 손이 서로 완벽히 독립적인 개체인 양 건반을 장악하는 테이텀 표 공연의 시금석일 따름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는 캘리포니아와 뉴욕을 무대로 솔로 활동에 치중했다. 그러다 1943년에 티니 그라임스(Tiny Grimes)와 슬램 스튜어트(Slam Stewart)와 함께 트리오를 만들었으나, 테이텀 특유의 개성적 연주와는 겉도는 수준에 머물렀다. 마침 비밥이 선풍처럼 불고 있었으나 테이텀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대위적 선율에 둘러싸인 구조는 산성불가침의 영역이었고, 원래의 선율 구조에는 손대지 않은 채, 그는 적절하게 원선율을 변형해 갔다. 스트라이드 피아노에 뿌리박은 전통에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으며, 패츠 월러 뺨치는 솜씨로 스윙할 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