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프 스미스 — 파가니니 뺨친 바이올린 주자

'전율적 파가니니'라는 극찬에 맞춰 끊임없이 쇄신하는 뮤지션임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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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프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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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평론가 티미 로젠크랜츠Timme Rosenkrantz는 스터프 스미스를 가리켜 “전율적 파가니니(palpitating Paganini)”라 지칭해 널리 회자되었던 일이 이름 높지만 정작 스미스 쪽에서 보자면 저 극찬에 맞추려 평생을 바쳤던 것으로 보인다.

고작 열 일곱의 나이에 알폰소 트렌트Alphonso Trent 악단에 들어간 헤저키아 르로이 고든 스미스Hezekiah Leroy Gordon Smith는 1930년대 초반까지 단원으로 있었다. 그 뒤에 조나 존스를 트럼펫 자리에 모셔 와 자기 밴드에 영입해 오닉스 클럽으로 무대를 옮긴 그는 큰 편성의 곡 ‘Upstairs’에 맞추거나 인기곡 ‘Onyx Club Spree’의 클라리넷 주자 버스터 베일리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그 곳에서 그는 40년대 중반까지 오닉스의 심장부를 주름 잡더니 시카고로 훌쩍 떴다.

50년대가 되어 서해안 지역으로 옮긴 스미스에게는 당시 시가 5천 달러의 명기 과네리우스가 안겨져 있었다. ‘Soft Winds’로 신세대 주자들과 협연 계약을 체결하고 ‘Paper Moon’으로 오스카 피터슨의 섬세한 연주와 운을 맞춘 그를 디지 길레스피와의 협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1960년대의 스미스는 유럽 예술계에서 주기를 높이게 되었는데 특히 스테판 그라펠리, 장 뤽 퐁티와의 최정상의 바이올린(violin summit)을 스벤드 아뮤센Svend Amussen과의 무대 등 생애 말년까지 갈채가 잇따랐다.

케니 드류, 닐스 헤닝 오르스테드 페게르센과 치렀던 놀라운 밥(bop) 협연으로 그는 스스로 끊임없이 쇄신하는 뮤지션임을 입증했다.

“트럼펫이든, 테너 색소폰이든 클라리넷이든 나는 항상 새 모습으로 거듭 났다.”

당시 세션 중의 작품 ‘Bugle Blues’가 저 말을 여지없이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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