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맥샨

아칸소에서 대학을 마치기도 전에 악단의 리더가 된 제임스 컬럼버스 맥샨은 사이드맨 시절이었던 30대 중반에 캔자스 시티에서 자기 악단도 이끌었다. 스타급은 뉴욕으로 뜨고 난 뒤였지만 암흑가와 연계된 부패 정치인 톰 펜더개스트의 뒷배로 많은 연주자들이 거기서 터전을 두고 있었다.
피아니스트이자 가수였던 맥샨의 악단은 캔자스 스타일의 대명사였는데 댄스와의 조화는 물론 히트곡 ‘블루스’로 도시가 들썩이게 했다. 최고의 블루스 소리꾼이었던 월터 브라운, 알토 색소폰의 찰리 파커(1937년부터 41년까지)를 사이드맨으로 두었으니 엄청난 축복이었다. 훗날 비밥의 거장이 되는 파커의 당시 스타일이 보존된 곡이 1841년의 ‘Hootie Blues’인데 맥샨 밴드 스타일의 전형이기도 하다. 1년 뒤 계약이 해지되어 LA로 간 맥샨은 지미 위더스푼의 도움으로 옛 동료들과 함께 인기곡 ‘Skidrow Blues’와 ‘Money’s Gettin’ Cheaper’를 만들었다.
맥샨은 5, 60년대 대부분을 캔자스에서 일했다. 1969년 런던의 재즈 엑스포 무대에서 솔로이스트로 활동한 것을 계기로 유럽 투어의 길을 트게 된다. 1980년대에는 드러머 폴 건터와 유럽 순회를 즐겨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