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제임스 — 재즈의 롱런 맨

그의 재즈 인생만 같아라~

In a nut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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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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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일곱 살의 나이로 해리 제임스는 부모의 순회 곡예단에서 드럼을 쳤는데, 3년 뒤에는 부친으로부터 트럼펫 수업을 받고 있었다. 10대 시절 부모가 가족을 꾸리게 된 텍사스에서 다양한 리더들과 연주를 한 그는 1935년 벤 폴락의 밴드에 들어갔다. 2년 가량 거기서 있다 베니 굿맨 악단에 들어 간 그는 누구도 흠 잡을 수 없는 연주자가 되어 있었다.

굿맨 밴드는 명실상부한 올 스타 악단이었는데 제임스는 곧 리더와 겨루는 위치가 되었으며 드러머 진 크루파와는 인기 경쟁을 하는 입장으로 올라섰다. 그의 화려한 연주 스타일은 밴드가 익히 궁합이 잘 맞아 있었고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지는 트럼펫은 루이스 암스트롱을 데려다 온 듯 했다. 제임스의 부기우기 트리오의 Boo WooWoo Woo는 약간은 모자란 듯한 재즈 스타일을 연상케 헸지만 특히 Carnegie Hall Concert에서의 빼어난 연주는 친숙한 동료들과의 협연이라 할지라도 그는 태생부터가 격이 다른 재즈맨이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족했다.

그의 인격에는 그러나 서커스 밴드 리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는데 굿맨과 결별해 자신의 밴드를 이끌어야 할 입장이 되자 제임스는 취입용 악단 쪽으로 힘을 기울였다. 왕벌의 비행트럼펫 블루스에서와 같은 화려한 연주가 대중적 인기와 국제적 명성에 날개를 달아주긴 했으나 재즈로 쌓아 올린 명성을 깎아 내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희소식이 있었다. 그의 재즈력(力)이 건재해 있었음을 확인시킨 일련의 음반 작업들이 그것으로, 테디 윌슨과 라이오넬 햄프턴과의 취입이 그것이다.

1950년대 들어 계속한 걸 보면 제임스가 일반 팬과 충성파 팬의 추종과 환호를 즐겼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50년대 말엽 들어 밴드를 본격 재건하기 전, 그는 충분히 안식 휴가를 갖기도 했다. 어니 윌니 윌킨스와 닐 헤프티처럼 유능한 편곡자들의 충직한 협업에 힘입어 카운트 베이시 스타일의 유려한 재즈가 그의 평생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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