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할러데이(1)

‘패배자’라는 낙인에 찍혀 불가사의하게 삶이 거덜난 그녀는 재즈사를 통틀어 봤을 때 최상위의 재즈 보컬이다. 그녀가 지녔던 재능은 본능적인 타이밍 감각, 닳아빠진 뮤지컬 넘버라도 전혀 다른 곡으로 되살려 내는 능력에 있었다. 그럼에도 빌리 할러데이는 생시에 다운비트 인기 순위상을 못 탔는데, 인생 여정은 보다 더 기구했다.
어려서 엘레노어 구 맥케이(Eleanor Gough McKay)로 불렸던 그녀의 생애는 끔찍한 궁핍, 갈채, 금전적 성공과 더불어 비열한 인종 차별 세태로 점철되었다. 열 살에 강간을 겪었던 그녀는 10대 창녀로 변했다. 평론가 존 해먼드에 의해 뉴욕에서 발견된 것이 18세였던 1933년. 소녀의 목소리에는 놀랍게도 산전수전 인생의 경험이 농축되어 있었다. 해먼드가 기획한 베니 굿맨과의 취입 스케줄은 미증유의 신화가 막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캐나다에서 트럼페터 루이스 메트 칼페와 활동한 그녀는 지미 런스포드와 함께 극장 무대에서 일한 뒤 1937년에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 들어가 있다가 1년 뒤 아티 쇼의 백인 악단에서 아홉 달 동안 모진 시간을 보냈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생애에서 그와 동시에 성공의 정점으로 기록될 일련의 음반 작업들이 착수되었다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테디 윌슨이 총괄 기획(A&R)의 깃발을 휘두르는 가운데 레스터 영, 로이 엘드리지, 벅 클레이튼, 자니 하지스, 벤 웹스터, 핫 립스 페이지, 카운트 베이시 등등의 쟁쟁한 연주진이 그 덕에 확보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그들의 따스한 배려 속에 할러데이가 부른 ‘The Way You Look Tonight’, ‘I’ll Never Be The Same‘, ’Without Your Love‘, ’On The Sentimental Side‘, ’Mean To Me‘, ‘He’s Funny That Way‘, ’More Than You Know‘ 처럼 헤아릴 수 없는 유행가들이 보석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녀의 나머지 활동 기간 내내 벌어진 일들이 그러했다. 데카 레코드가 1940년대 중반 청중 확산책으로 주력했던 전략이 현악 반주는 최대의 사건이었다. 그 같은 ’대중화‘ 시도는 이후에도 여전했지만, 그녀의 재즈에 본질적으로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