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크의 분신— 자니 하지스

그는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작은 거인이었다.

  • Johnny Hod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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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eb 9, 2026

In a nut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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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하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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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목관 파트(reed section)에 자니 하지스가 들어간 것 그리고, 들어가지 않은 편성이 또 다른 하나다. 그가 빠진 대신 버버 마일리, 쿠티 윌리엄스, 바니 비가드, 소니 윌리엄스, 소니 그리어 등으로 이뤄진 것으로 정격의 듀크 엘링턴 사운드를 구사하던 편성이 다른 하나다. 그 키 작은(5피트 5인치) 남자의 유무에 따라 악단의 소리가 엄청나게 달라졌던 것이다.

존 코넬리어스 하지스의 출발점은 드럼과 피아노였으나 열 네 살 때 색소폰으로 악기를 바꿨다. 그는 열 네 살이던 1925년 시드니 베셰와 연주했으나 20대 후반 들어서는 로이드 스콧, 럭키 로버츠, 칙 웹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1928년 5월 듀크 엘링턴 밴드에 들어간 하지스는 1951년까지 그 인연을 이어갔다. 주목할 점은 그 사이 그의 스타일이 극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관악기가 대세였던 그 악단에서 그의 연주는 ‘Cotton Club Stomp’와 ‘Hot Feet’ 같은 업 템포의 곡에서 리듬을 밀어주는 역할이었다. 당시 그의 존재감은 음악적으로 절정이었다.

1930년대 들어 사회-경제적 환경이 변함에 따라 음악적 분위기에도 변화가 초래되었다. 하지스의 음악이 보다 낭만적으로 변했다. 소프라노 색소폰의 ‘Dear Old Southland’(1933), ‘Bundle Of Blues’(1933)와 ‘I Let A Song Go Out Of My Heart’(1938)는 그 과도기적 증거였다. 그러나 결정적인 계기는 1939년 빌리 스트레이혼이 공동 작•편곡자로 초빙되면서부터였다. 듀크의 ‘Don’t Get Around Much‘와 ’Warm Valley‘, 스트레이혼의 ’After All‘ 또한 소편성의 ’Day Dream’과 ‘Passion Flower’ 같은 작품은 아예 하지스의 명작으로 굳어져 버렸다.

1951년부터 하지스는 듀크의 오케스트라에 재입단한 1955년까지 자기 밴드를 이끌었다. 실제로 그는 제리 멀리건, 로이 엘드리지와 얼 하인즈 같은 스윙 시대의 거물들과 어깨를 견주는 인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유명한 트럼펫이 찬란히 재림한 것은 사부(師父)의 악단에서였다. 그는 ‘Star Crossed Lovers’, ‘Isfahan’, ‘Black Butterfly’, ‘Blood Count’ 같은 발라드 곡에서 그의 낭만적 색소폰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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