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 킹 콜

(재즈 뮤지션이라기보다는) 대중 가수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 사실일 뿐 아니라 스스로 택한 가사들 대부분이 치졸했고 선곡의 폭도 좁았다. 그러나 나다니엘 애덤스 콜의 재즈 빛깔 짙은 목청은 그 같은 단점을 너끈히 보상한다. 재즈 가수가 부른 곡으로서는 예외적으로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누렸던 Mona Lisa나 Too Young을 무대에서 부를 때에도, 그는 (재즈 가수로서) 청중의 안이한 예상을 뒤집었다.
시카고의 음악 가정에서 태어나 활동하다 LA에서 정착할 무렵, 마침 피아니스트 겸 보컬리스트로 자신이 출연하고 있던 무대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1939년. 궁여지책으로 그는 동료 오스카 무어(기타), 웨슬리 프린스(베이스)와 킹 코울 트리오를 만들었다. 당시 관행상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이 기형 악단은 콜 특유의 유려한 피아노 스타일과 기막힌 조화를 빚어냈다. 당시 유행했던 정갈한 취향을 만족시킨 Honeysuckle Rose가 좋은 예다. 그 작품은 대중성 속에 가려지기 십상인 진보적 측면을, Slow Down은 반주자의 역량과 자신의 보컬을 조화시키는 능력을 입증한 곡이었다.
그가 유행가 가수에 머물렀다는 비판은 그의 일면만을 본 탓이다. 실제 그는 피아니스트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커피 빛 목청이 재정적 난관을, 아주 “우아한 방식으로” 헤쳐나가는 데 기여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는 인기 팝 가수가 된 딸 나탈리 콜과 가상 현실에서 듀엣을 실현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