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이 되고 싶어한 재즈 주변인— 캡 캘러웨이

여전히 재즈의 주변인 중 괄목할만한 인물 정도로 인식되고 있긴 하지만 그가 이끈 밴드는 1930년~1962년 활동한 악단 중에서는 최상급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Cab Calloway
  • ·
  • Stylist
  • ·
  • Nov 26, 2025

In a nutshell

    캡 캘러웨이
      Listen

캡 캘러웨이

캡 캘러웨이.png

대리 드러머나 번개 알토 색스맨이라는 대타 역할로 잘 알려진 카벨 캘러웨이 2세는 어엿한 음악과는 담을 쌓아야 했을 팔자였다. 보드빌 쇼(혹은 대중 예술)이기도 했던 재즈가 감내해야 할 숙명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캘러웨이가 명성을 얻었던 것은 1920년대 들어서였는데 결정적인 것은 29년 시카고의 한 행사 진행을 맡으며 역량을 과시하면서였다. 1년 뒤 미주리로 가서 가졌던 ‘Tiger Rag – Market Street Stomp’ 재해석 무대가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 계약서 상으로 캡 켈러웨이와 그의 오케스트라로 변경되었고 1931년에 카튼 클럽의 듀크 엘링턴 밴드를 계승하기에 이르렀다. 캘러웨이가 ‘St Louis Blues’와 ‘Minnie The Moocher’ 속의 그 유명한 스캣 싱잉을 확립한 곳이기도 했다. 감미로운 보컬과 미국의 방방곡곡에 요동친 “하이디 하이디 하이디호” 합창은 당대를 휩쓸었다. 해리 화이트(트롬본), 월터 토마스(테너 색스), 윌리엄 블루(클라리넷) 같은 뛰어난 솔로이스트의 연주력이 재즈 팬들을 붙들었다.

그 편성은 1948년까지 유지되었는데 특별 출연 형식을 제외하고는 캘러웨이가 빅 밴드 리더로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여전히 재즈의 주변인 중 괄목할만한 인물 정도로 인식되고 있긴 하지만 그가 이끈 밴드는 1930년~1962년 활동한 악단 중에서는 최상급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Listen

Subscribe

Jazzaje의 정원에서 최신 글과 업데이트를 받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