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의 원조, 마 레이니

'흑인 연예인 갈취단'에서 꽃 핀 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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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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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이론의 여지가 없는 말이지만 마 레이니는 블루스의 어머니다. 트릭시 스미스나 베시 스미스가 레이니보다 먼저 취입을 하긴 했으나 여류 블루스 가수의 진짜 원조라면 당연히 그녀다.

거트루드 맬리사 닉스 프리제트(Gertrude Malissa Nix Pridgett, 본명)가 사실상 데뷔한 것은 12세 때 조지아 주 콜럼버스에서의 Bunch Of Blackberries라는 쇼 무대를 통해서였다. 3년 뒤 결혼해 여인(woman)으로 변신한 그녀는 남부의 흑인 주거 지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대행 업체 TOBA (Theater Owners And Bookers Association, 순회 악극단의 극장 예약 대행사)에서 일했다. 그러나 사실 당시 알 만한 사람들은 소속된 흑인 아티스트에 대한 전횡과 폭행으로 이름 높던 그 업체를 두고 ‘흑인 연예인 갈취단’(Tough On Black Artist)이라며 비꼬기 일쑤였다.

1923년 파라마운트 사와 독점 취입 계약을 맺고 북쪽으로 녹음 여행 일정에 올랐다. 대단히 열악한 기술 수준이었음에도 음반들은 마 레이니에게 전국적 성공을, 나아가서는 독점 쇼 무대를 선사했다. 또한 동행하던 조지아 밴드는 종신 전속 악단으로 승격했음은 물론 1920년대 내내 흥행했다. 순회 쇼 디바의 놀라운 목청에서 울려 퍼지던 나른한 감성이 리듬에 실려 객석으로 치달을 때면 가사 하나하나가 청중을 들쑤셨다. 위대한 유랑 악단 아티스트는 노래의 차원을 넘어선 음악극의 주인공으로 환생한 것이었다.

마 레이니가 남긴 음반들은 최상급이라는 상찬에 값한다. *‘Countin’ The Blues’*를 보자. 암스트롱이 코넷으로 쾌활함 속의 구슬픈 여운을 살려 낸 차원에 비견되는 성취에 달하고 있다. 로비 오스틴 블루스 세레나데 밴드와 만든 일련의 음반들은 형식과 균형(shape and balance)이라는 미학적 원칙을 담보해 내는 작품이었다. *‘Blame On The Blues’*처럼 초창기 블루스와 유사한 작품일수록 민속 음악과의 유사성이 보다 강력히 대두되었다.

1923년과 1928년 간의 5년 동안의 상당 기간은 Georgia Jazz Band와의 협업으로 백여 편에 가까운 취입이 이루어졌는데, 1933년 이후에는 사랑하던 고향 조지아를 벗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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