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 재즈의 속삭임 — 서부 해안에서 불어온 차분한 열정
1950년대
역사는 과연 반복하는가?
1950년대 초의 재즈 상황을 들여다보면 그 같은 생각이 철로 든다. 백인 뮤지션들이 대거 미국 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결집, 바로 앞 세대가 남긴 최대의 유산인(비밥)을 공통의 과제로 하여 집단 탐색에 들어갔다. 비밥이 창조적 유산으로서 진지하게 탐구된 것이다.
스윙 재즈 시기의 대표적 뮤지션들, 예를 들면 레스터 영과 베니 카터 같은 사람들의 음악이 아직은 사랑받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쿨 재즈의 기조는 방금 이야기했다시피(밥)이었다.
쿨cool이란 말은 음악의 이름치고는 별로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이름은 일련의 부정적 이미지들을 곧바로 연상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즉
무기력한 enervated
,병병적인 clinical
,쇠잔해 진 emaciated
따위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그러나 음악으로서의 쿨 재즈는 전혀 그렇지 않다. 먼저, 그때그때 음악의 유행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은 뮤지션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최대의 가치는 재즈 고유의 영역인 즉흥 연주 improvisation에 있었다. 주관적인 감정은 되도록 버리고 재즈 고유의 순수 미학을 천착해 갈 것을 주장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재즈의 즉흥성이다. 그들은 말하자면 재즈의객관주의자
요, 재즈의미학주의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