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그림자와 비밥의 탄생 — 격동의 40년대 재즈
제2차 세계 대전은 재즈계에도 대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무엇보다 빅 밴드 재즈
의 불을 댕겼다. 해외 파견 군인들에게 재즈라는 음악은 단순한 음악만이 아니었다. 미국 병사들은 그 고향의 음악을 들으며, 짙게 스며드는 향수를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그 인기가 단 두 가지, 즉 글렌 밀러와 토미 도시가 각각 이끄는 빅 밴드 음악에만 집중되었다. 그 외의 빅 밴드들은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엄청난 전쟁은 물론 불행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재즈의 경우, 그 폐해는 단순히 그러한 일반론을 넘어섰다. 뮤지션이라고 해서 국가의 부름(징병)
이 면제되었던 것은 아니다. 스타급들에게도 그 같은 일은 예외가 아니어서, 하나 둘씩 밴드를 떠나야 했고 더러는 전쟁터에 나가서 불귀의 객
이 되기도 했다. 전황이 날로 치열해져 가던 1943-1944 년에는 재즈에의 수요가 더욱 간절해졌다. 모든 역량을 전쟁에 동원해야 하는 입장의 국가는 풍기를 단속하기 위해 취입 금지라는 극약 처방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즈를 향한 열기는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무렵, 혈기 넘치는 젊은 연주인들을 중심으로비밀 지하 운동 underground movement
의 형태로 새 음악이 모색되었다. 그 재기 발랄한 신세대 재즈 뮤지션들의 온상은 초거대 도시 뉴욕이었다. 새 음악 어법을 모색하는 진취적 열기의 재즈 세션들이 잇따라 벌어졌는데, 그 중심지는민턴스 플레이하우스 Minton’s Playhouse
와먼로스 플레이하우스 Monroe’s Playhouse
라는 클럽이었다.

▲ 재즈사상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의 가수로 추앙받고 있는 사라 본. 그 풍성한 커피빛 알토로 1940년대 이후 재즈 보컬의 여왕으로 군림해 오다 1990년 66세로 세상을 떴다.
기존의 여러 음악 법칙들의 타당성 여부가 검증되었고, 많은 경우 새로운 법칙으로 대체되어 나갔다. 그반역
의 주도자들, 즉 찰리 크리스천(기타), 디지 길레스피(트럼펫), 찰리 파커(알토 색소폰)는 모두 바로 앞 세대의 재즈인 빅 밴드를 체험한 사람들이지만, 이제 그질곡
에서 벗어나 보다 큰 자유로 향한 모험을 떠난 것이다.
그 탐색의 결과, 참으로 혁명적인 변화가 생성되었다. 스윙 재즈 시기의 감미로운 선율 대신 기본음 조직이새롭게 구축 rebuilding
---다시 잘 다듬기redesign
정도가 아니라 ——된 음악, 근본에서부터 전혀 새로운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이들비밥의 아버지
들은 모두 즉흥 선율 melodic improvisation의 대가들이었다. 그것은 널리 알려진 기존의 선율을 토대로 자신의 개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방식의, 혁명적 재즈였다.
원작품의 코드 진행을 기저로 하여 그들은 전혀 새로운 음 구조물을 빚어낸 것이다. 일례로, 도저히 못 믿겠어 Stupendous라는 곡이 있다. 그 곡은 유행가 놀랍군 S’Wonderful을 원재료로 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옛날 음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고리타분한 친구들 squares
에게는 전혀 다른 음악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환골탈태한 것이다.
당연히 혼란이 일었다.저게 도대체 뭐냐
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음악을 만들어낸 자들은 그러한 호들갑에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음악에만 열중했다.
이런 식의팬 fan 형성
, 즉이해 못하는, 또는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그룹 in-group에서 배제하는 방식
이야말로 새 음악의자기 진영 구축 방식
이었다. 이것이 말하자면,비밥의 게임 규칙
이었다.
그장난꾼
들은 자기네들의괴팍한 음악
에 대하여 사람들이 혹시나 허튼 통념이나 얄팍한 호기심 같은 것으로는 접근할 수 없도록 음악적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즉, 이전의 재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빠른 템포와 잘 쓰이지 않는 까다로운 조 key를 주재료로 하여 음악을 만든 것이다.
그 비밥이라는 새 음악을 듣는 데에는 나름대로의통과의례
가 필요했다. 우선, 자기네들끼리만 통하는 독특한 차림새가 그 첫째였다.
그 패션의 모범이 된 인물이 바로 비밥의 멋쟁이 디지 길레스피이다. 그가 애용한 검은 안경, 베레모, 염소 수염이 바로나는 비밥 진영
이라는 강력한 표식이었다. 길레스피는 비밥이라는 새 재즈 그 자체, 혹은비밥적인 그 무엇
을 일반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파해 낸 유능한 전도사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