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랭

기타와 밴조의 달인 에디 랭이 솔로 기타리스트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최초의 인물이었다고 한다면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 사실 그가 1920~30년대의 재즈 악단 Mound City Blues Blowers와 함께 미국은 물론 영국의 피카딜리 호텔까지 무대로 활동했던 것은 사실이다. 악기를 기타로 바꾸기 전에는 11년 동안을 바이올린을 켜며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피들러 주자 조 베누티와 듀엣으로 함께 활약했다.
베누티와의 협연 경력은 음악적으로 풍성한 열매로 이어졌는데 랭의 깔끔한 연주가 재즈 밖으로도 환영받게 되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당대 인기 있는 유흥 댄스 밴드 몇몇과도 협연하기도 했으나 막상 재즈 팬들에게는 빅스 바이더벡과 같은 거물급들과의 창조적 연주가 호소력을 가졌다. Singing The Blues에서의 솔로는 뭇 기타리스트들의 시금석이었으며 건성으로 연주한 리듬 스타일이었을지라도 바이더벡 급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1928년 바이더벡 주도 아래 베시 스미스와 가졌던 블루스 기획은 듣는 이들의 혼을 흔드는 걸작이었으나 당시 그를 둘러싼 일련의 잡다한 정황은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아름다운 솔로 라인과 베시의 유연한 타이밍은 새 차원의 재즈를 선사했다. 더불어 베누티와의 협연으로 일궈낸 매혹적 선율에다 레드 니콜스, 폴 화이트먼, 로저 울프 칸 등과 맺은 일련의 취입으로도 가작들을 양산했다. 인기 가수 빙 크로스비와 2년 동안 가작들을 발표했을 뿐더러 29년 기타리스트 로니 존슨과 만든 듀엣 작품은 감각적 코드, 정교한 현악 반주에 힘입어 랭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편도선 절제술의 부작용으로 초래된 그의 죽음은 재즈 공동체에 커다란 충격을 몰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