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 존슨

By Russell Lee - FSA photo by Russell Lee, via digital copy at Library of Congress website.
바이올린으로 시작했던 그는 악기를 기타로 바꿔 고향인 뉴올리언스에서 수년간 활동했다. 1922년 세인트루이스로 이사 가 찰리 크리스와 페이트 마라블과 함께 일했지만 오케 음반사의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1925년에 본격 경력이 시작되었다.
1927년 오케에서 활동 중이던 루이스 암스트롱의 핫 파이브와 작업하게 되면서 Savoy Blues에서 느긋하면서도 인상적인 독주를 선보였다. 전혀 힘들이지 않고도 독창적인 스윙은 듀크 엘링턴 밴드의 편성에서라도 충분히 먹혀들 만한 기량이었으며, Stardust에서의 거장적 솔로는 동년배 거물 McKinney’s Cotton Pickers가 스탠더드 넘버를 요리하는 솜씨를 방불케 했다.
하여튼 존슨의 진정한 위상을 입증한 것은 에디 랭과의 듀엣이었다. Two Tone Stomp, Bull Frog Moan, Blue Guitars는 랭의 짐짓 축제적인 연주보다 한 수위였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 바로 블루스 가수로서 자기 본래의 스타일을 견지한 존슨 스타일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 지점이다. 특히 1925년부터 1932년까지 오케 음반사와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던 시기는 뉴올리언스의 매력과 포크 음악에 재즈의 매력이 어울려 때로 완벽의 경지를 엿본 것으로 평가된다.
30년대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존슨은 퍼트니 댄드리지, 자니 다즈와 함께 팀을 짜 1952년 영국을 방문했다. 듀크 엘링턴에 다시 합류해 1963년까지 활동했는데 1970년 세상을 뜨기까지 캐나다 토론토 블루스 콘서트 등을 장식했다. 최초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기타리스트가 에디 랭이었듯 로니 존슨은 재즈 기타계의 진정한 솔로이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