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ind Lemon Jefferson

블루스의 거장으로 칭송받는 블라인드 레먼 제퍼슨이 일찍 현실을 깨닫게 된 데는 블랙에다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인지 모른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흑인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그나마 음악이 최선의 방책임을 이른 나이에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기껏 열 살을 넘기자마자 소도시 댄스 무대에서 연주를 해야했던 그는 열 일곱이 되자 생계를 위해 댈러스로 이사했다. 거기서 수입이 나아졌는데 일자리가 레슬러였다! 한시적이긴 했지만 댈러스의 홍등가에서 음악을 할 때는 꽤 쏠쏠한 생활을 누리기도 했다.
그에게 본격적으로 관심이 쏠린 것은 1925년 이후 본격 착수한 취입 작업덕이다. 자작곡으로 발표한 음반들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진솔한 가사에 실린 힘으로 ‘민중 시인(folk poet)’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나쁜 여자, 성적 탐닉, 앞 못 본다는 사실에 대한 묘한 호기심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거칠고 불량스런 어감의 제목도 한몫했다. Shuckin’ Sugar, Bad Luck Blues같은 제목의 곡들에는 묘한 슬픔조차 담겨져 있었다.
Jack O’Diamonds는 노동요에서 테마 선율을 따온 노름 노래였다. 자연 재해를 노래한 Rising High Water와 Baker Shop Blues는 굶주림의 고통이 주는 공포가 그림 그리듯 선명한 이미지로 담겨있었다. 소재를 불문하고 제퍼슨은 압도적인 표현력으로 불러냈고 설령 가사가 생뚱맞은 경우였을지라도 선율속에서 기막히게 제자리를 찾아 갔다.
Hot Dogs는 그가 댄스 박자 기계처럼 엄격한 연주를 할 수 있었으나 기타리스트로서는 엇박자를 동시에 실현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본인의 노래가 붙을 경우, 모든 곳이 완벽해졌다. 설령 그가 열 세 마디 블루스를 연주했다 할지라도 그는 음악적으로 독창적이었고 그것으로 필요 충분했다.
1930년 57세로 시카고에서 숨을 거두기 전까지, 여러 번 갈채와 환호의 중심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