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암스트롱 — 재즈의 궁극적 전도자

트럼펫 연주와 노래뿐 아니라 그 음악 자체의 비길 데 없는 전도사인 루이스 암스트롱

  • Louis Arm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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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 16, 2025

In a nutshell

    재즈의 궁극적 전도자

재즈의 궁극적 전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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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uis Armstrong - Best Of Louis Armstrong - Japan 2 Blu-spec CD2

출처 : CDs Vinyl Japan Store

어느 분야든 특정 1안을 가장 위대한 인물로 내세우려면 대단한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재즈에서는 루이스 대니얼 암스트롱 덕에 그 같은 고민이 봄눈 녹듯 사라진다. 트럼펫 연주와 노래뿐 아니라 그 음악 자체의 비길 데 없는 전도사였다는 점에서.

요즘 시각으로 본다면 테크닉적으로 능가하는 자들이 적지 않지만 다들 암스트롱에게 헌정할만한 걸작의 한 조각도 만들어내지 못 했다. 더군다나 20세기 초라는 시대 상황 논리로 비춰보자면 그 같은 비범함은 훨씬 더 극적이다. 당시 관악 주자들은 두 그룹으로 대별되었는데, 뉴욕서 활동하던 뉴 올리언즈 출신의 느슨하면서 단순한 앙상블 아니면 군악대 스타일의 뉴욕파 자니 던 파였다. 이 재즈의 본질이기도 한 타이밍의 문제는 훗날 암스트롱을 만나 보다 정교하면서도 풍성한 양상으로 열매맺게 된다. 당시 약관을 갓넘긴 22세 청년의 엄청난 기량은 음반으로 동시대인들을 매혹시켰다. Chimes Blues에서의 솔로나 Froggie Moore에서의 놀라운 테마 선율 덕에 ‘독창적’이란 수식어 정도로는 감당 못 할 실력파로 각인되었다.

훌륭한 작품들이긴 하지만 이후 5년 동안 일궈낸 성과에 비추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부인 릴의 득달같은 요구가 없지는 않았으나 음악적 안목이 더 틔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24년 뉴욕의 플레처 핸더슨 악단에의 합류였다. 1년 남짓 지나, 보잘것없던 악단이 그로써 무서운 혜성으로 둔갑했다. Everybody Loves My Baby에서의 주선율 연주는 밴드를 휘어잡았다면 How Come You Do Me와 TNT에서 발휘된 역동적 솔로로 당대 재즈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동시에 그는 클레런스 윌리엄스의 블루 파이브와 취입중이었는데 전성기의 고난도 기교가 얼핏 보이는 Lovin’ High 같은 곡들과 함께 도망치듯 수줍은 연주가 인상적인 Texas Moaner가 확인된다, 치피 힐, 클라라 스미스, 메기 존스, 호시엘 토마스 등 당대 일류 블루스 가수들의 취입 현장에서도 돋보인 그의 연주였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베시 스미스와 만든 음반이었다. 암스트롱의 장인적 기량이 천연덕스럽게 펼쳐지는 St Louis Blues, 상대방에 대한 놀라운 배려가 돋보이는 Careless Love, 트럼펫과 인간의 목소리가 최상급의 수준으로 융합하는 Cold In Hand 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걸작의 행진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1925년 11월, 암스트롱은 당대 제일급의 뮤지션들과 함께 첫 음반을 만들었는데 클라리넷 주자 자니 다즈, 트로본의 드 오리, 밴조의 자니 세인트 서johnny St Cyr, 그리고 피아노에 아내 릴이었다. 그들이 남긴 음반은 재즈 역사상 최상위에 있다. 완전무결한 뉴올리언스 재즈 앙상블의 경지에서 한발짝 비껴나 유유자적하는 무애의 경지다. 암스트롱의 박자 감각 덕에 새 생명을 얻은 Skid-Dat-De-Dat와 더불어 Come Back, Sweet Papa에서 보여준 도입부의 묘미, Cornet Chop Suey의 우렁찬 포효는 거물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었다.

1928년 캐롤 디커슨의 빅 밴드로 돌아갔지만 소편성 악단에의 갈증은 여전했다. 새 6인조 편성의 핫 파이브로 그는 보다 진일보한 솔로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West End Blues의 도입부가 재즈 사상 가장 유명한 즉흥 솔로라는 데 이견을 다는 자는 것의 없는데, 암스트롱부터가 녹음을 확인하고는 흥분을 주체못해 내달렸을 정도였다.

30년대 들어 쇼 비즈니스 음악의 생리가 몸에 배기 시작한 암스트롱의 관심은 대편성 오케스트라들과의 취입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여기서도 예기치 못한 음악적 수확이 있었으니, 암스트롱 특유의 창법에 대중적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노래들이 악기 연주법을 확장 시키다보니 나온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한 것이었으나 목소리만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음역은 협소한 것 외에도 학문적 관점에서 보자면 끔찍한 수준의 목청이었으나 치고빠지는 타이밍, 절묘한 프레이징과 스윙감은 향후 재즈 창법은 물론 전반적 대중 음악에 걸쳐 혁명적 표준을 제시했다.

1933년 최초의 유럽 여행을 가졌으나 입술 질환으로 휴식을 가져야 했다. 2년 뒤, Mahogany Hall Stomp와 Swing That Music 등을 필두로 해 최상의 커디션을 보이며 루이스 러셀 밴드의 맨앞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핫 파이브가 일궈낸 앙상블보다 암스트롱의 짜릿한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자는 전략이었다.

악단을 7인조 편성으로 늘리는 시도가 기막히게 먹혔다. Wild Man Blues와 Potato Head Blues에서 암스트롱이 보여준 장쾌한 솔로는 트럼펫의 신지평을 열었으며 이후 거의 모든 악기 주자들의 모델이 되었다. 매우 특출한 기량의 뮤지션들을 위한 재즈의 모델로서는 유효했으나 예술의 총체성이라는 미덕을 해치는 것이었다.

Chimes Blues

Froggie Moore

Everybody Loves My Baby (1983 Satchmo Version)

How Come You Do Me Like You Do?

T.N.T.

Texas Moaner Blues

Hociel Thomas Deep Water Blues (1926)

Bessie Smith Careless Love Blues

Cold in Hand Blues – YouTube

(3) NEW ORLEANS JAZZ & HOW TO PLAY IT – YouTube

Skid-Dat-De-Dat - Louis Armstrong & His Hot Five (1926)

Come Back, Sweet Pa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