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환을 말한다 — 박재천의 기억 (2)

일본 사람들이 선생에게 애원하다시피 하는 말이 있었다. 제발 스탠더드를 단 한 곡만이라도 연주할 수 없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그 비밀을 들여다 보았다. 본격 무대 전 리허설 할 때 나와 재미 삼아 스탠더드 곡을 몇 번 연주한 적이 있다. 깜짝 놀랄만치 능란한 스윙이었다. 우리의 즉흥이 재즈의 바탕 위에 서 있다는 걸 보이기 위해 그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선생이 들려주는 포(four) 비트의 스윙 프레이즈가 대중과의 통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만큼 재즈 본연의 정신에 충실한 뮤지션은 없다고 믿는다. 그를 둘러싼 숱한 오해는 단적으로 말해 찰리 파커나 존 콜트레인을 연주하지 않았다는 데서 기인한다.
선생을 이해하기 위해, 나아가 재즈의 참 모습을 알기 위해 이 대목은 참으로 중요하다. 재즈를 예술로 보는 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그런 행위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선생의 생각을 거스를 길이 없었다. 재즈를 대중 음악으로 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따라서 선생에겐 타인의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일도 대단히 부정적인 것이 된다. 최대의 관건을 독창성에 두기 때문이다. 재즈란 10년마다 자기 갱신을 해 온 위대한 예술이다. 선생이 그 같은 전통을 존중한다는 점은 선생이야말로 기량을 초월한, 진짜 재즈맨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 아닌가!
문제는 창조성에 있다. 재즈가 왜 클래식이 아닌가… 연주자의 독창성을 최상의 가치로 삼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한국의 재즈 풍토에서 가장 걱정하는 바는 특정 곡의 반복이다. 레퍼토리 연주는 재즈가 클래식화해 간다는 징조라고 본다.

투어 가다 보면 공연 끝내고 즉시 다시 연습에 들어가기가 보통이었다. 외지에서 잠 못 드는 버릇 때문인데, 보통은 술로 잠을 청하지만 술을 안 마시는 선생은 잠 못 들면 연습하는 경우가 많다. 동료 뮤지션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그 같은 엄청난 연습량이다.
일본 연주회 때는 그 곳의 4인승 열차칸에 일본 연주자 3명과 같이 타는 일이 잦는데, 동승한 프리 재즈 피아니스트 사토 마사히코씨가 “제발 잠 좀 자자”며 애원할 정도였다. 연주 소리는 안 나고 딸깍딸깍 키 누르는 소리만 밤새도록 끊일 줄 모르니, 동료들이지만 때로는 견디는 데 한계가 있다. 아예 화장실 가서 연습할 때도 있다. (사실 저자도 일이 있어 댁에 전화 걸면 “연습 중”이란 말을 듣고 한참 뒤에 다시 통화를 시도한 일이 한두 번 아니다)
색소폰 주자들은 리드(reed)를 물고 연주하다 보면 이빨이 잘 상하는데, 선생의 경우는 2000년도 중반에 아예 틀니로 갈아 끼웠을 정도다. 외견상 거의 움직임이 없어 보이는 그의 연주 방식은 이빨을 갈아치울 만큼 매우 격하다. 색소폰 주자의 정년을 보통 55세까지로 보는 데는 그 같은 이유가 있다.
연주 중 잠시 나갔다 올 때가 더러 있다. 틀니를 빼 답답함을 풀어보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생은 나름의 노하우를 개발해 오래 버티고 있는 셈이다. 나의 사비를 털어 만든 앨범 Seven Breath가 틀니를 쓰지 않고 자기 이빨로 연주해 만든 마지막 앨범이다. 현재(2011년)까지 선생은 13개의 이빨을 갈아 바꿔 끼웠다.
그렇다. 그는 나의 희망이자, 동시에 절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