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연대기 — 10년마다 피어나는 새로운 선율의 마법

재즈의 생명력은 기존 질서에 대한 ‘창조적 반항’, 즉 조반유리 정신에 있다. 축음기 덕분에 기록된 1920년대 이전 재즈의 탄생기부터 래그타임의 메아리, 뉴올리언스 스타일의 정립, 그리고 음반 취입을 둘러싼 아이러니한 역사까지, 재즈의 첫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 Original Dixieland Jass 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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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zz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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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y 27, 2025

In a nutshell

    재즈 연대기 — 10년마다 피어나는 새로운 선율의 마법
      래그타임의 메아리: 재즈 탄생 이전의 풍경과 거장들

재즈 연대기 — 10년마다 피어나는 새로운 선율의 마법

과거 한때 유행했던 재즈 스타일을 되살려 보려는 오늘날의 일부 뮤지션에게도,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재즈의 생명력은 바로 조반유리(造反有理)의 정신에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문혁(文革: 문화 대혁명)의 깃발을 내걸고 대륙을 개조하고자 했던 1960년대 당시를 풍미했던 일세의 지도 지침이었다.

그것은 요약하자면, 자신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말살하려 드는 기존 질서에 대한 창조적 반항 정신이다.

20세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오늘날, 중국 공산주의도, 또 소련 공산주의도 생존을 위해 그 본래의 모습으로부터 현저히 이탈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 정신의 요체, 즉 조반유리라는 대명제는 재즈 발달사에서의 핵심 논리로 삼을 만하다.

이제 재즈의 탄생기부터 지금까지, 시대별 스타일들을 쭉 개관해 보자.

래그타임의 메아리: 재즈 탄생 이전의 풍경과 거장들

1920년대 이전

재즈의 역사는 그 탄생 시점부터 상당히 잘 기록, 정리되어 있는 편이다. 축음기 덕택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1920년대 이후이다. 그때가 되면 음반으로 기록되어 전해 오는 증거물이 많아, 후대 사람들이 재즈의 역사를 처음부터 거슬러 올라가 추적해 낼 수 있다. 1920년대 이전에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축음기라는 물건이 있기는 했으나, 재즈의 역사를 왜곡시켜 놓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뉴올리언스 트럼펫의 원조 중 한 사람이었던 프레디 Freddie Keppard는 1916년에 음반 취입 제의가 들어오자 그 기회를 거절하고 말았다. 표절당하는 것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표절에 대한 불안은 신경 과민의 수준으로까지 나아갔다. 전전긍긍 하던 그는 어처구니없는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자신의 연주 스타일을 열렬히도 베껴먹고 싶어 하던 어느 백인 밴드에게 공개해 버리고 만 것이다. 1920년 오리지널 딕실랜드 재스 밴드 Original Dixieland Jass Band가 취입 재즈 악단 제1호의 영예를 차지하게 된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흑인 밴드의 아류에 지나지 않던 어느 백인 악단에게 전혀 뜻밖의 영광이 돌아갔다. 어쨌거나 노예 해방이 이루어지자, 그들 노예 가운데 활동력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음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고향인 서아프리카의 리듬, 유럽 음악으로부터 도입된 반음계 diatonic, 뉴올리언스 민속 음악과 당시 교회 음악……. 그 모든 것들을 재료로 하여 재즈라는 맛있는 케이크가 구워진 것이다. 거기에다 서인도 지역의 음악이 향신료가 되어주었다. 뉴올리언스 지방에서는 또, 프랑스 민요 가수의 영향도 있었다. 재즈란 음악이 그렇듯 미국 남부의 노예 사회를 모태로 하여 태어났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정설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신생의 그 음악은 아직 이름도 없었고 출신 지역도 불분명한, 실로 만인의 재산이었다.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즉, 훗날 재즈라고 불리게 되는 이 음악은 20세기로 진입하기 약 10- 20년 전, 미국의 남부 지역에서 태동했다는 사실이다. 그 음악은 흔히들 생각하듯, 뉴올리언스 지역에서만 발전한 것은 아니다. 그런 식의 즉흥 연주는 볼티모어, 세인트루이스, 오클라호마 등 도시 지역에서는 물론, 텍사스, 미시시피, 플로리다, 테네시 등지에서도 보였던 것이다. 단, 그 단계에서는 재즈가 아니라 아직 래그타임 ragtime이었다. 피아노 독주이건, 행진 악대이건 무도회 악단이 연주하건 간에 그 당시는 다 래그타임으로 통했다. 그러나 그중 가장 중심지는 역시 뉴올리언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도시의 홍등가인 스토리빌 Storyville에는 1급 피아니스트와 지방 특유의 악단이 고용되어 있었는데, 그곳뿐 아니라 전 도시가 음악으로 살아 있었다. 호화스러운 장례식에서부터 비밀 회합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의 생활에 활력을 가져다준 것이 음악이었다. 당시 일류 음악가에게 부여된 특권은 엄청난 것이어서, 그들 모두에게는 멋쟁이 아가씨들이 항상 뒤를 따랐다. 일류급 트럼펫 주자에게는 특별히 성찬이 베풀어졌다. 사람들은 그들을 기꺼이 으로 대접했다. 그렇게 등극한 맨 처음 사람은 버디 볼든 Buddy Bolden이었는데, 오래지 않아 프레디 케퍼드가 찬탈했다. 케퍼드 역시 킹 올리버 King Oliver에게 양위해 주고 말았다. 뉴올리언스 재즈 악단에서 사실상의 리더는 높은 대접을 받던 트럼펫 주자였다. 그러한 점은 음악에도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 도시의 음악 스타일은 다분히 외향적이었다. 트럼펫이 뽐내듯 강렬한 직선적 주제 선율을 뽑으면, 클라리넷이 거기에 장식음을 달고 트롬본이 끝마무리를 짓는 식이다. 다소간의 변형이 있었을지 몰라도, 바로 그것이 멀지 않아 뉴올리언스 스타일로 널리 알려지게 되는 재즈 스타일의 기본 골격이 되었다. 가끔은 트럼펫이 두 대 사용되었으며, 색소폰이 추가될 때도 있었다. 색채감을 더욱 풍성하게 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트럼펫─트롬본─클라리넷의 전면 배치 방식이 최고의 방식으로 차츰 굳어갔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편성 방식이 차츰 진부해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도 일기 시작했다. 그들을 두고 재즈 비평가 제1세대로 통칭하기도 한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편성 방식이 차례로 등장했다. 즉 꽉 짜인 편성의 스윙 재즈 오케스트라, 예술적 균형미가 돋보이는 비밥 5중주, 프리-폼 free-form 재즈 4중주에서 두 대의 색소폰, 1970년대에 등장한 8중주단 형식 등이 그 족보이다.

그러나 그중 최상의 형식적 완벽미를 구현한 것은 단연 뉴올리언스 재즈의 앙상블이다. 약동하는 리듬감, 그리고 그 어떠한 장르의 음악 양식도 잘 흡수해 낼 수 있는 특유의 창조적 포용성, 이것이 뉴올리언스 재즈의 미덕이다. 뉴올리언스 재즈는 또, 집단적 재즈 연주 collective jazz playing에서 후대의 그 어떤 스타일도 추종 못할 하나의 확고한 모범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뉴올리언스 집단 즉흥 재즈와 시대적으로 평행하면서, 또한 그에 버금가는 중요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음악이 래그타임 피아노 음악 ragtime piano이었다. 19세기 말엽까지 지그 피아노 jig piano로 불렸던 래그타임 피아노가 꽃 핀 도시는 미주리 주의 세 달리아와 세인트루이스였으며, 그 음악을 독자적 예술 형식으로 발전시킨 핵심 인물은 스콧 조플린 Scott Joplin, 톰 터빈 Tom Turpin, 그리고 제임스 스콧 James Scott 이었다. 래그타임은 실제 연주될 때에는 즉흥의 요소란 없었다. 그러나 싱코페이션(syncopation, 당김음)을 도입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싱코페이션의 발달은 재즈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다.

자니 던(Johnny Dunn), 프레디 케퍼드 등이 구사하던 재즈는 엄격하고 딱딱한 박자감이 무엇보다 두드러지는데, 20세기 초 래그타임 악단의 음악이 어떠했나를 쉽게 알 수 있다. ‘재즈’라는 용어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의 의미와는 다르게 쓰였다. 초창기 재즈와 재즈 특유의 당김음이 희미하게나마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으나, 이들이 남긴 녹음을 들어보면 ── 그들의 활동기는 녹음 기술이 첫 선을 보인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 피아노 래그타임 음악이 대편성 악단의 음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17년 스토리빌의 공창(legalized prostitution) 시대가 마감하자, 그와 동시에 ‘뉴올리언스 시대’도 사실상 종막을 고했다. 그 일은 결과적으로는 재즈 기술을 주변의 여러 지역으로 전파하는 효과를 가져와, 재즈의 중심이 시카고, 댈러스, 멤피스, 캔자스시티, 뉴욕 등지로 옮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함께, 재즈는 이제 축음기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었다.

재즈 밴드 중 맨 처음으로 취입의 기회를 누린 것은 앞서 말했다시피 완전 백인 악단이었다. 이는 어찌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최고의 재즈를 들려준 것은 흑인 악단이었는데, 취입의 기회는 그들을 제쳐두고 백인 악단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흑인에게 가해진 불평등은 여기서도 잘 드러난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션들

  1. 유비 블레이크(Eubie Blake, 미, 1883-1983) 피아노, 작곡.
  2. 자니 던 Johnny Dunn (미)(1897—1937) 트럼펫.
  3. 스콧 조플린 Scott Joplin (미)(1868-1917) 피아노, 작곡.
  4. 프레디 케퍼드 Freddie Keppard (미)(1890-1933) 코넷.
  5. 젤리 롤 모턴 Jelly Roll Morton (미)(1890-1941) 피아노, 보컬, 작곡, 편곡.
  6. 킹 올리버 King Oliver (미)(1885-1983) 코넷, 작곡.
  7. 오리지널 딕실랜드 재즈 밴드 Original Dixieland Jass Band (미) (5인조 백인 악단: 코넷, 트롬본, 클라리넷, 피아노, 드럼).

1920년대는 음악적으로 보나, 아티스트 개인의 존재 양식으로 보나 재즈사의 그 어느 시기보다도 격동의 시기였다. 어떤 이는 이 시대를 가리켜 재즈 시대, jazz age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는데, 옳은 표현이다. 딕실랜드 재즈 밴드의 활약으로 재즈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시기는 I 다리’연대가 아니라 그보다 앞선 iqn 년이지만, 재즈가 단순한 풍문의 I 차원을 넘어서서엄언한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된 때가 벌® I다라 년 대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제1차 세계 대전이 미국에 끼친 영향은 유럽 사람들보다는 훨씬 덜했다. 미국 본토에서의 삶은 전쟁이 언제 있었냐는 듯 잘 굴러갔고, 래그타임 음악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재즈는 진탕 마시고 노는 무도회에서, 홍등가에서, 극장을 주 무대로 하여 번창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