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파커, 재즈의 신화가 되다: 파격과 천재성의 삶
그러나 거기서 끝낸다면 아직도 재즈는 추상 명사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가장 인간적 예술이라는 재즈에 인간의 이야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 책 역시 재즈에 대한 짝사랑 고백 정도를 벗어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찰리 파커의 전기 영화 *「버드 The Bird」*를 1994년 9월 TV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게는 분명 큰 행운이었다.
그에 의해 재즈는 피와 살을 지닌 예술로 승화할 수 있었다. 그런 느낌, 나아가 그런 믿음을 그 영화 *「버드」*는 벅차게 안겨주었다. 그 글은 그러니까 그 영화와 내가 찰리 파커에 대해 갖고 있는 여러 정보들을 서술한 것이다.
그 작업의 주재자는 찰리 파커가 남긴 재즈였다, 당연히.
그가 죽고 나자,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발굴되고 유포되었다. 2차 텍스트에 의거하긴 했지만 이 책의 글도 물론 그중 하나일 것이다. 찰리 파커는 그 자체로서 참으로 인간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재즈 텍스트이다. 그에 관해서는 그래서 무수히 많은 말들이 떠돌았고 또 헌정되었는데, 글쓴이가 본 것으로는 그중 다음 말이 가장 압권이었다.
〈파커의 삶은 최대의 찬사와 최악의 오해로 점철되었다 Never was any musician more appreciated and least understood. 〉
그럼 그 삶의 풍경은 어떠했는지, 자세한 내용은 본문으로 넘기도록 한다.
그리고 그 이후는 말하자면 보유(補遺)편이다. 독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 몇 가지 정보를 모아 엮었다. 세계의 유명 재즈 음반의 레이블들, 재즈의 고전적 저술들, 그리고 재즈의 기본 용어 등을 간략하게 서술해 두었다.
그로써 이제 할 말을 어느 정도는 다 했다. 한국, 1996년에 씌어진 *〈재즈 리포트〉*를 세상으로 내보낼 때가 된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재즈 책 발간이 1980년대 이후로 꾸준하게 추진되어 온 사실을 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이렇게 왜 또 하나의 재즈 책인가? 이 질문은 이 책의 의미를 존재론적으로 따지고 있다. 그러므로 간과할 수 없는 질문이다.
한국에서 재즈란 결국은 외래 문물이다. 따라서 관련 서적들도 번역서였다. 물론 텍스트들은 모두 현지에서 재즈 개론서나 재즈사 서적으로서 일정 수준의 정평을 확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책들을 곧바로 번역해 놓고 보니, 서구 일변도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같은 책으로서는 재즈가체감
되기 힘들었다. 거기까지가 말하자면 한국의 재즈 서적제1대(代)
였다.
그러나 1990년대로 접어들자 재즈에 대한 논의는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차원을 달리했다. 당시부터 일기 시작한 한국 재즈 붐을 고려한 신간 재즈 서적이 두세 권 나왔고 더러는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보다 작은 규모의 논의들도 하나 둘씩 생겨났다. 재즈 담론들은 PC 통신, 소식지, 대학 신문 고정 칼럼 등 여러 수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왜 새 책이 나와 또재즈 타령
인가?
문화는 살아 있다. 끊임없이 변한다. 특히 둘 이상의 문화가 맞물리면 그 순간 그 사이에서는 지배와 피지배, 상위 문화와 하위 문화, 수용과 변용, 주체와 객체를 테마로 하여 일대 전투가 벌어진다. 다만 그 싸움이 이른바문화적 색채
를 띠므로, 즉 대단히 점잖은 형태로 그것도 서서히 진행되므로 그 기저에 굳건히 도사리고 있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잘 드러나지 않을 따름이다. 문화적 변동이란 그래서어느날 갑자기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의 형태로 체감되기 일쑤다.
이 책은 그 같은 장기적 구조적 변동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중간보고서, 재즈라는 문화 현상과 한국인 사이에 알게 모르게 구조화해가고 있는 의미에 대한 고찰이다. 되도록지금, 여기
의 입장을 견지하려 했다는 말이다.
1990년대 한국에서 범 사회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재즈라는 매혹적 선구 문화는애드벌룬
인 동시에실체
이다. 바로 그 시점에서 나온 이 책은 그렇다면실체로서의 재즈
로 통하는 길로 가는 안내서로 읽히길 바라면서 세상으로 향한다.
글을 맺기 전에 몇몇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꼭 전하고 싶다.
먼저 1990년 12월《한국일보》에재즈 재즈
라는 박스 기사를 연재하도록 결정해 주신 박찬식 문화부장(현재 논설위원)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나의 재즈 글쓰기에의 꿈은 바로 거기서부터 구체화하고 단련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주간한국》의 재즈 시리즈로 이어졌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최신판 재즈 책들을 유학 중인 미국에서 부쳐준 친구 윤종수. 그의 도움이 없었던들 이 책은 물론 그동안의 적잖은 재즈 기사들 역시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 책들로부터 나는 재즈에 대한 글쓰기 작업의 영감을 얻었고 또 자극 받았다. 고전 중의 고전인 『재즈 북 The Jazz Book』(1992년판), 재즈 아티스트들의 인명사전인 『재즈 길잡이 The Jazz Handbook』(1989년판), 그리고 재즈 야사(野史) 모음집인 『재즈 일화집Jazz Anecdotes』(1990년판) 등 세 권이 그것이다.
출판 작업에 결정적으로 도움 주신 신문사 서화숙 선배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이주엽, 육상효, 신영동도 글쓰기 작업에 여러모로 신경 쓴 고마운 친구들이다. 막내동생 은영은 작업 틈틈이 참신하고 재미있는 의견들을 제시해 주었다. 또 몇 가지 귀한 사진 자료들을 제공한 KJC(한국 재즈클럽)에 감사한다.
이렇게 체제 갖춘 책이 나오기까지 질책하고 애쓰신 황금가지 이영준 사장과 편집부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뒤편에 나오는 용어 설명, 재즈 음반 명레이블 등은 초고에는 없었으나, 편집진의 지적 덕분에 추가시킬 수 있었다.
서양 음악과의 본격적 인연은 거개가 다 그렇겠는데, 글쓴이 자신도 팝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대학 가서는 클래식에 빠져 들어갔다. 물론 팝 쪽도 블루스를 포함, 더욱 확산되어 갔다. 그 후 입사하고 나서는 재즈를 틈틈이 듣게 되었다. 천박한 음악 편력을 늘어 놓은 것은 그런 식의 양상이 대다수 사람의 음악 경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재즈를 더욱 많이 알고 듣게 되시기를, 삶의 길동무로서. 거기까지 닿는 길을 알려주는재즈의 전략적 지도
로서 이 책이 그 소임을 다해 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